지난 1일 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이 홍콩 국제공항에서 시위를 벌였다. 홍콩 당국은 전철 운행을 중단시켰고, 대부분의 시위자는 20km를 걸어서 시내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이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승용차를 끌고 공항으로 향했고 순식간에 5천여 대가 몰려와 시위대를 태우고 귀가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당일 상황을 시간 순서별로 살펴보면, 오후 1시경 시민들이 홍콩 국제공항 여객터미널 일대에 집결했다. 시위대는 도로에 임시로 바리게이트를 설치했고 도로 곳곳은 극심한 정체 현상을 빚었다. MTR(홍콩철도유한공사) 측은 홍콩 정부 및 경찰과 공조해 공항 고속전철운행을 중단시켰다.
오후 3시께 증원된 경찰 병력이 공항에 나타나자 일부 시위자들이 철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항 고속전철 운행이 중단됐기 때문에 시위자들은 공항로를 따라 5km 떨어진 퉁청(Tung Chung·東涌) 전철역까지 걸어서 가야 했다.
시위대가 퉁청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역이 폐쇄되고 열차 운행이 중단된 뒤였다. 다음 역은 13km나 떨어진 써니베이 역이었다. 도로는 걸어가는 시위대와 시민들로 가득했다.
이 소식을 들은 홍콩 시민들은 자가용 승용차를 몰고 나와 시위대가 귀가하는 것을 돕기 시작했다. 이른바 ‘백 홈(Back home)’ 지원 활동에 나선 차량은 공항 근처에서 시위자들을 태워 귀가시켰다. 버스와 화물차도 앞다퉈 시위자들의 귀가를 돕겠다고 나섰다.
Dunkirk evacuation staged in #HongKong. All the brake lights are the volunteer drivers who helped rescuing thousands of protesters to safe places. Those protesters were trapped in Tung Chung due to the shutdown of the metro system and surrounded by riot police. #SOSHK pic.twitter.com/wKrSNtNsrp
— Demosistō 香港眾志 (@demosisto) September 1, 2019
22세 아시(阿夕,가명)는 입장신문(立場新聞) 기자에게 “총 거리가 20km다. 사람들이 목적지로 가기 위해 거의 4시간을 걸어가야 하는데, 며칠간 연속해서 가두시위에 참여해 이미 발이 아프고 물집도 생긴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는 오후가 되면서 이둥(逸東) 단지에서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 칼을 휘두르고 경찰이 공항 쪽으로 밀고 들어오고 있으며 퉁청선도 운행을 중단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고 말했다. 또 버스나 배를 타고 돌아가려 해도 경찰이 막고 조사하며 검문검색까지 한다는 소식도 있었기 때문에, 북 란타우 하이웨이로 가는 것 외에는 시내로 돌아갈 방법이 없어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에는 청마 대교에서 경찰과 맞붙을 계획이었다. 배수진이었다. 경찰이 보이면 덤벼들 작정이었다”면서, 다행히 시민들의 지원 차량 덕분에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의 차량 검문이 걱정되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공격할 무기는 버렸고 방독면만 가지고 있었다. 잡히면 하늘의 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라고 대답했다.
홍콩 작가 라이언 호 킬패트릭(何松濤)도 이번 도보 행렬 속에 있었다. 그는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찍은 여러 편의 영상을 트위터에 올렸다.
More and more private cars offering lifts to protesters like it’s Operation Dynamo over there. pic.twitter.com/S01p0dlRov
— Ryan Ho Kilpatrick 何松濤 (@rhokilpatrick) September 1, 2019
시위자들이 북 란타우 하이웨이를 따라 귀가하는 영상 속에는 어서 타라고 외치는 운전자들의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
귀가 지원에 참여하는 자가용 차량이 계속 늘어나 기나긴 차량 행렬이 만들어졌다. 어떤 운전자는 시위자들에게 갈아입을 옷이나 음식, 음료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가 란타오섬과 중국대륙을 연결하는 청마대교 톨게이트를 촬영한 영상에는 수많은 자가용 차량이 시위자를 안전하게 귀가시키기 위해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찍혔다.
밤 10시께 청마대교 톨게이트에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이미 차를 타고 현장을 떠난 상태였고, 버스 정류장 부근의 3~4개 차선은 승용차로 가득했다. 차량 운전자들은 시위자들에게 어서 타라고 외쳤다.
누리꾼들은 이 모습을 2차대전 당시 유명했던 ‘됭케르크(Dunkerque) 퇴각 작전’의 재연이라고 평가했다.
영화 ‘덩케르크’로 익히 알려진 ‘됭케르크 퇴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 진행된 전략적 후퇴 작전을 말한다. 1940년, 독일군은 프랑스 군대의 마지노선을 함락한 후 영불 동맹군을 포격했다. 프랑스는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고 영국, 캐나다, 프랑스가 뭉친 동맹군은 됭케르크(벨기에에 가까이 있는 프랑스의 항구)에서 공동으로 수비하며 철수 방법을 강구하기로 했다.
그러나 배는 적고 사람은 많았다. 병사들이 프랑스 해안에 정체돼 곤경에 처하자 영국은 수송함 외에도 어선 등 각종 선박을 총동원했다. 수백 척의 배가 영국 도버해협을 출발해 됭케르크로 갔고 40만 명에 달하는 연합군 병사가 구출됐다. 이는 당시 최대 규모의 철수 작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