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는 인권 유린 사건 보도 웹 사이트를 운영한 반체제 인사에게 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12년 형을 선고했다.
시민기자 황치(黃琦.56) 씨는 2년간 구금된 후 7월 29일 선고를 받았다. 지난 1월에 비공개 재판이 진행됐다. 황씨의 형량은 2012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권력을 잡은 이후 반체제 인사에게 내린 가장 심한 판결 중 하나다.
쓰촨성 몐양 중급 인민법원은 판결문에서 황씨가 국가기밀을 누설하고 외국기관에 국가기밀을 제공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황씨는 웹사이트 ‘64 톈왕(六四天網)’을 운영하며 반체제 인사, 민원인, 파룬궁 수련자, 가정교회 등 정권이 억압하는 단체와 인권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이 웹사이트는 중국에서 차단됐다.
지난 2년간 여러 외국 정부 당국자와 국제인권단체는 중국 정부에 황씨 석방을 요청해왔다.
국경없는기자회(RSF) 사무총장 크리스토퍼드루아르는 이날 성명서에서 “이 판결은 사형 선고 다름없다. 황치의 건강은 이미 10년의 가혹한 감금으로 나빠질 만큼 나빠졌다”고 발표했다.
드루아르 사무총장은 시 주석을 향해 “너무 늦기 전에 황치 씨가 석방되도록 사면권을 부여하는 아량을 베풀어 달라”고 촉구해왔다.
굴복할 줄 모르는 행동주의자
쓰촨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황씨는 1990년 말 톈왕 추적국(Tianwang Tracing Office)이라는 조직과 웹사이트 ’64 톈왕’을 개설했다.
톈왕 추적국은 실종자 정보를 사이트에 올려 인신매매를 추적하려는 목적으로 시작했다.
또한 황씨는 톈안먼 사태의 희생자에 대한 글 등 정치성 강한 기사들을 게재하며 당국의 눈 밖에 났다.
중국 정부는 2000년에 64 톈왕을 폐쇄했지만, 황씨는 멈추지 않고 미국에 기반을 둔 웹 호스팅을 사용해 사이트를 다시 열었다.
결국 반체제인사로 낙인찍힌 황씨는 2000년 6월 3일, 바로 톈안먼 광장 대학살 기념일 하루 전 구금됐다. 이후 2003년 “국가 권력의 전복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석방된 후 황씨는 인권 문제를 다룬 정보를 온라인에 지속적으로 게시했으며, 2006년에는 중국 최초의 포괄적 인권단체인 ‘중국 톈왕 인권센터’( 天網人權事務中心)라는 새 이름을 내걸고 인권 운동을 이어갔다.
황씨는 쓰촨 지진 때도 활약했다. 그는 5300명의 학생을 포함해 8만7000여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던 2008년 쓰촨 지진 사태 이후 학교 건물의 부실시공을 조사하고 지진으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을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황씨는 2008년에 다시 체포됐으며 1년 후 “국가 기밀을 불법으로 소유했다”는 이유로 3년 형을 복역하고 2011년 풀려났다.
이후에도 황씨는 여전히 자신의 신념과 행동노선을 지켜나가다 또다시 2016년 중국 당국에 붙잡혀 지금에 이르게 됐다.
그는 지난 20년간 RSF 언론자유상(2004년, 2016년)과 헬만-하멧 보조금(2007년) 등을 수상했다.
한편, 황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무죄를 호소하며 당국에 석방을 요청하고 있다. 그녀는 지난 2월 초 아들의 석방을 위해 외국 외교관과 만났다가 현재까지 공안의 감시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헬만-하멧 보조금(Hellman-Hammett Grants)
국제인권기구인 휴먼라이트워치(Human Rights Watch)가 집행하는 보조금. 정치적 탄압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전 세계 문인들에게 제공한다. 명칭은 미국 극작가 고 릴리안 헬만과 동료 소설가 데쉬엘 하멧의 이름에서 유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