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은 중국에 무엇을 가져다주었는가(上)

청샤오룽(程曉容)
2018년 02월 28일 오전 9:43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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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산과 맑은 물, 아름다움과 풍요로 가득했던 고대 중국의 발자취는 현대에 이르러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의 아름다운 고향이던 이곳은, 그리고 5천여 년간  찬란한 문명을 이어온 이 나라는 공산당에 파괴당했다. 중국 공산당은 68년 동안 중국과 중국 국민들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가?

책 한 권이 이 수수께끼에 답을 제시한다. 2004년 11월, 대기원시보가 발표한 사설(社說)  <9평공산당(九評共產黨)>은  역사와 현실을 결부해 중국 공산당의 사악한 본성을 파헤쳤다. 이 사설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80여 년에 이르는 중국 공산당의 역사를 훑어보면 어느 곳에서나 끊임없는 거짓말, 전란(戰亂), 기아, 독재, 학살과 테러로 얼룩졌다. 중국 공산당은 중국의 전통적인 신앙과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중국인 고유의 윤리(倫理) 관념과 사회체계를 강제로 해체해 버렸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조화는 투쟁과 증오로 변질됐고, 천지자연(天地自然)을 경외(敬畏)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천지와 투쟁하는’ 미친 듯한 광기로 변질됐다. 그로 인해 사회의 도덕체계와 생태계가 전면적으로 붕괴하면서 중화민족뿐만 아니라 전 인류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이 모든 재난은 공산당의 정밀한 획책과. 조직과 통제 아래서 발생했다.”

<9평>에는 오늘날 중국의 모습이 정확하게 나타나 있다. 자연이 죄다 파괴되었고, 사회 전반이 혼탁해지면서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인심은 예전의 순박함을 잃게 됐다. 도처에 널린 것은 오로지 위기에 대한 조짐뿐이다. 현재 중국 공산당 체제에서 살아가는 이들 중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모든 국민이 공산당을 혐오하는 가운데 중공은 안간힘을 다해 공산당의 잔명을 겨우 부지해나가고 있다. 96년 당시의 정치 노선인 ‘위광정(偉光正)’을 현재까지 표방하며 자신들의 행태를 옹호하고 있다. 자신의 이익이 공산당의 이익과 부합하는 소수만이 중국 공산당에 환상을 갖고 나아지기를 기대할 뿐이다. 중국 공산당의 본성과 수법은 개선됐는가. 이제 우리는 이를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

1. 비슷한 비극과 변함없는 악랄함

1) 생명의 소중함을 멸시하고 살육을 일삼다

1970년 4월 18일, 중국 역사학계의 기재(奇才) 션위안(沈元)이 ‘반혁명 조국 배신죄’로 총살당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2세였다. 그는 1955년 대학입시 수석합격자였다. 하지만,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에게 ‘극우 인물’로 낙인찍혀 가산을 몰수당하고 아내와 함께 쫓겨났다. 더는 갈 곳이 없던 션위안은 한 주중 대사관을 찾아 보호를 요청했지만 결국 살해되고 말았다.

1980년 션위안의 가족은 명예 회복 통지서를 받게 됐다. 그의 모친은 “내 아들을 돌려줘. 이딴 종이는 필요 없어. 종이는 필요 없다고! 나는 멀쩡하게 살아있는, 똑똑하고 총명한 아들을 나라에 보냈는데 왜 종이만 온 거야!”라고 소리치며 통곡을 했다.

이와 같은 사건은 1995년에도 있었다. 허베이의 청년 녜수빈(聶樹斌)이 억울한 판결로 사형을 당했다. 2016년 12월 2일, 중국 최고법원은 이 사건에 재심을 진행하고 기존 판결을 뒤집었다. 그의 무죄가 입증됐다. 당시 재심 판결에 참여한 녜수빈의 모친 장환즈(張煥枝)는 일어서서 선고를 듣고 있다가 선고가 끝나자 북받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내 아들은 이제 못 돌아와!”라며 주저앉아 오열했다.

션위안과 녜수빈은 결코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중국 공산당에 의해 죽은 수천만 명의 중국인 역시 마찬가지다. 생명을 멸시하는 중공의 폭력적인 본성이 선량한 국민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중공은 68년 동안 전제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치 운동을 일으켰다. 이를 통해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을 공격하고 공포심을 조장했다. ‘계급투쟁’ 혹은 ‘안정 도모’라는 미명하에 무고한 국민이 죽어 나갔다. 무고한 이들이 ‘반볼셰비키 그룹’으로 몰려 학살됐고, 토지개혁 당시에는 ‘지주’라는 이름으로, 반혁명진압과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반혁명분자’로 처단됐다. 6∙4 천안문 민주화 운동 때에는 비무장 학생과 시민들이 총칼 아래 숨졌고, 1999년부터 시작된 파룬궁 탄압 과정에서는 수많은 수련생이 체포, 고문 끝에 사망했다. 중국 공산당의 통치사는 그야말로 피와 살인의 연속이다.

2) 종교를 탄압하고  신앙을 박해하다

중국 공산당은 창당 이후부터 줄곧 두려움에 떨어왔다. 권력을 잃고 죗값을 치르게 될 날이 올 줄 알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은 무신론을 주장하며 당의 본성에 따라 인성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종교를 탄압하고 신앙을 박해했다. 인민의 자유의지를 억압하고 우민화 정책으로 국민을 세뇌해 모든 사람을 공산당의 도구로 만들려 했다. 정풍(整風) 운동과 반우(反右) 운동, 문화혁명과 6∙4천안문 사태, 그리고 파룬궁 탄압과 인권변호사 박해까지 중국 공산당은 정의구현에 나선 인물들을 호도하고 그들의 발언을 왜곡했다. 공산당은 ‘반혁명죄’ ‘당 지도자를 공격한 죄’ ‘나라를 배신하고 적에게 투항한 죄’ ‘국민을 선동해 정권을 전복하려 한 죄’ ‘국가기밀 유출 죄’ ‘반중국 죄’ 등 없는 죄목을 수없이 지어냈다. 오로지 국민을 박해하기 위함이었다.

그동안 중국 공산당은 인터넷과 언론을 엄격하게 통제해 진상을 봉쇄해왔다. 최근에도 진실을 말하는 대학교수들을 정직하거나 해고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웨이보와  웨이신 계정이 폐쇄되거나 누리꾼의 댓글이 삭제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일각에서는 ‘만마제음(萬馬齊喑: 만 필의 말 중에 한 마리도 울지 않음)’이라는 말로 자유롭지 못한 언론 환경을 빗대기도 했다.

베이징의 한 대학교에 재직 중인 왕 모 교사는 인터뷰에서 “복종하지 않으면 밥도 못 먹어요. 그들은 과거에도 이런 식이었어요. 1957년 우파 탄압이 있었을 때 가족 중 한 사람이 우파로 몰리면 일가족이 연루돼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취업도 못 했어요. 학자들이 지금 이런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신랑(新浪) 웨이보의 유명 블로거 ‘화샤정다오(華夏正道)’의 본명은 정징셴(鄭景賢)인데, 광둥성 파룬궁수련생인 그는 2016년 말에 구치소에서 변론문을 썼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죄가 된다면 그것은 내 수치가 아니라 문명사회 전체의 치욕이다. 어떤 발언에 죄를 묻는 것, 글로 인해 감옥살이를 하는 것, 그리고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중화인민공화국의 헌법을 위반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2015년에 일어난 ‘709’ 체포 사건은 해외 언론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신당인TV(NTD )는 중국 인권 변호사 관주조(CHRLCG)의 통계를 인용해, “2015년 7월 6일 오후 6시까지 변호사와 변호사 사무소 직원, 인권운동가, 그리고 그들의 가족 등 최소 320명이 면담ㆍ소환ㆍ출국금지ㆍ연금ㆍ감시ㆍ체포 등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당국의 억압은 계속되고 있다. 인권변호사 여러 명이 실종되거나 자백 강요 또는 불법 체포를 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당사자들과 그들 가족이 당한 피해에 대한 항의는 모두 묵살됐다. 이는 중국 공산당 사법계의 부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장톈융(江天勇) 변호사는 “하지만 그들이 우리를 탄압하면 할수록 공산당 체제가 허울뿐이라는 사실과 그들의 통치 아래 사회 풍토가 사악해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꼴이 된다. 현재 사람들은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바꿔야 하며 반드시 끝내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천광청(陳光誠) 변호사는 장톈융 사건에 대해 “당신이 중국 공산당에 희망을 품고 있다면 그것 자체가 잘못이며 그들에게 농락당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라는 집단이 존재하는 한 중국에 법률과 공평정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7년 7월 4일 가오즈성(高智晟) 변호사는 <709 사건 2주년을 맞이하여>라는 제하의 글에서 “공산당은 절대 의법치국을 실현할 수 없다”고 밝혔다.

3) 속임수와 거짓말

<9평>은 “속임수와 거짓말은 공산당의 또 다른 유전자다. 중국 공산당은 농민에게 토지를, 노동자에게 공장을, 지식인들에게 자유와 민주, 평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실현되지 않았다. 공산당에 속은 중국인 세대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또 다른 세대가 그들의 거짓말에 속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중국 공산당은 정권을 유지하고 공고히 하기 위해 입장과 원칙을 번복하고 폭력과 기만을 일삼고 있다. 공산당의 이러한 행보는 그동안 일어난 참혹한 정치 운동에서도 나타난다. 그중 희대의 사기극으로 알려진 ‘반우양모(反右陽謀)’가 있다. 1957년 중국 공산당은 지식인들에게 의견 제시를 호소했다. 이와 관련해 <9평>은 “당시 사람들의 자유로운 발언을 장려하는 몇 마디 구호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꼬투리를 잡지 마라,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우지 마라, 지난 일에 대해 시비를 가리지 마라’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반우투쟁 당시 55만 명은 ‘우파분자’로 낙인찍혔고 27만 명은 공직을 잃게 됐다. 또 23만 명은 ‘중우(中右)분자’ 및 반공산당, 반사회분자’로 분류됐다.

당의 입이 된 언론매체들은 공산당의 사기극을 도왔다. 대량 거짓 정보를 유포하고 역사를 왜곡했다. 본지의 특별 보도 <공산주의는 출구가 아니라 막다른 길이다>에는 중국 공산당이 체계적으로 역사를 왜곡한 사례가 실려 있다. 그 가운데 일부를 소개한다.

“이리저리 도망만 다니던 퇴각 상황을 ‘북상항일(北上抗日)’의 대장정으로 미화했다. 산베이에 숨어 일본에 대항하고 있는 국민당을 지켜보기만 하던 공산당은 ‘항일전쟁의 버팀목’으로 묘사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인끼리 서로 죽이며 싸웠던 내전(內戰)은 ‘해방전쟁’으로 둔갑했다. 3천만 명이 기근으로 사망한 대규모 인재를 ‘3년간의 자연재해’로 축소했다. 10년에 걸친 문화대혁명의 책임은 ‘사인방’에게 전부 뒤집어씌웠다. ‘6∙4 대학살’은 ’반혁명 폭동 진압’으로 포장했다. 그리고 ‘진(眞)ㆍ선(善)ㆍ인(忍)’을 수련하는 파룬궁 수련생을 폄하하고 수십만, 심지어 수백만을 대상으로  노동교양소 감금ㆍ고문ㆍ생체장기적출 등 인권 말살을 일삼았다. 하지만, 중국은 이를 ‘중국 인권 보장의 최고 시기’ ‘법치국가 중국’이라는 말로 꾸몄다.”

2. 도덕과 전통의 붕괴

5천여 년을 이어온 중화민족의 문명 속에는 ‘천인합일’ ‘권선징악’ ‘충효절의’ ‘인의예지신’ 등 수많은 정신적 사상이 빛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사람의 도덕 기준을 규정하고 가정의 안정과 사회 화합을 보장해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공산당은 권력을 거머쥐면서 3교(유교, 불교, 도교) 탄압, 문물 훼손, 고대 선현 및 전통 가치 모독 등 전통문화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또한, 중국 공산당은 국민에게 당 문화인 ‘거짓ㆍ죄악ㆍ투쟁’ 사상과 무신론을 강제로 주입했고, 전통문화의 정신적 뿌리는 오히려 절단했다.

<9평 공산당>은 이렇게 말한다.

“중국 공산당은 물질적인 측면에서 종교와 문화를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인정받고 사랑받아온 신앙과 문화까지 말살했다. 역사 속 어떤 황제도 중국 공산당처럼 폭력ㆍ파괴ㆍ욕설을 통해 국민이 신성시하고 아름다워하는 존재를 빼앗아가지 않았다. 이는 이념을 소멸하는 것이 때로는 단순한 물질을 소멸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고 지속적이기 때문이다.”

몇십 년 동안의 투쟁과 소탕을 거치면서 도덕은 붕괴했다. 이로 인해 현재 중국인은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다. 폭력이 인애(仁爱)를 대신하고 퇴폐가 순결을 대신했다. 사람들은 신성한 것을 더는 경외하지 않고 무시하거나 제멋대로 대하기 시작했다. 마오쩌둥을 위시한 많은 간부는 교만하고 황음무도한 무리였다. 그 시대를 거쳐 장쩌민 시기에 들어서자 탐관오리들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부패의 극치에 다다랐다. 그 결과, 소수만이 부유해지고 하층 노동자와 농민은 여전히 빈곤에 허덕이게 됐다.

도덕 붕괴로 인한 후폭풍은 사회 각 계층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이 결과를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유독식품은 도처에 널려 있고 모조품은 흔한 존재가 됐다. 폭력사태가 유혈사태로 번지는 일이 빈번해지고 신뢰는 온데간데없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엄숙함 역시 사라졌다. 교육계와 의료계는 혼란 속에 빠져 교사가 학생을 강간하고 의사가 신체 장기를 훔치거나 생체를 적출하는 등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나타났다.

웨이저시(魏則西)ㆍ레이양(雷洋)ㆍ리촨싱(李傳星)ㆍ독성 백신ㆍ상하이 아동학대ㆍ장시성 난창시에서 벌어진 ‘사람 양식장’ 신장 판매 사건ㆍ일본 유학생 살해사건 등 잇따르는 비극은 ‘도덕’이 유린당한 현실을 반영한다. 전통을 무시하고 도덕을 무너뜨리고 ‘진, 선, 인’을 혐오하는 정당이 중국을 어디로 끌고 가겠는가? 이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한 평론가는 “중국 공산당의 통치가 해결 불가능한 수많은 인성 문제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