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장쩌민파 지방세력의 몰락

샤샤오창(夏小強)
2017년 07월 24일 오후 1:12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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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 지저우(冀州)로 불렸던 허베이(河北)성은 지리적으로 베이징(北京)과 톈진(天津) 등 두 개의 직할시를 둘러싸고 있는 수도권의 관문으로 금(金)왕조 때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여겨졌다. 따라서 중국 공산당의 정치판도에서도 허베이 성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장쩌민파의 허베이성 장악은 저우융캉을 필두로 진행됐다. 그는 자신의 인맥들을 허베이성 고위직에 배치했고 정법위 세력의 핵심 거점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제18차 당대회부터 지금까지 저우번순 허베이성 서기, 장웨(張越) 성 정법위 서기, 징춘화(景春華) 성 위원회 비서장, 량빈(梁濱) 조직부장 등 허베이성 상무위원만 4명이 낙마하면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저우번순, 장쩌민파 정변에 참여

2013년 3월 20일 저우번순은 중앙정법위 비서장, 중앙 사회치안종합치리위원회(社會治安綜合治理委員會) 부주임으로 재직 중 바로 허베이성으로 발령 받아 단번에 수도권 핵심 지역의 성 위원회 서기로 올라섰다. 이는 저우융캉이 자신의 낙마에 대비해 정법계통 진영을 사수하기 위한 중요한 조치였다.

저우번순은 저우융캉과 긴밀한 사이였고 오랫동안 시·성의 중앙급 공안·검찰·법원 분야에 재직하면서 대량의 측근들을 양성해 왔다. 이 때문에 저우융캉, 보시라이(薄熙來), 쉬차이허우(徐才厚) 등 정변 집단에서 핵심적인 일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결코 가볍게 여길만한 인물은 아니었던 것이다.

2012년 저우융캉은 허베이성에 ‘국가안보 안정유지(國安維穩)’를 시범 실시토록 했다. 그 뒤 1년여 동안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을 끊임없이 불법으로 체포했다. 이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친 사람이 바로 저우융캉의 심복, 저우번순이었다.

저우번순은 과거 보시라이-저우융캉의 정변에 참여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정변 명단에 따르면 그는 중국 공산당 최고법원장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또 링지화(令計劃) 사건에도 연루돼 있었다. 링지화의 아들 링구(令穀)가 2012년 3월 ‘페라리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을 당시, 한 보도에 따르면 저우융캉과 링지화는 이 사건 관련 특별팀을 조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당시 정법위 비서장이었던 저우번순과 링지화의 처남 구위안쉬(穀源旭)가 이 사건을 공동으로 처리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저우융캉을 체포한 뒤 바로 저우번순을 수사하지 않았다. 2015년 공산당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 개최 전에야 체포했는데, 중국의 베터랑 언론인 장웨이핑(薑維平)이 그 내막을 폭로했다. 당시 저우번순이 장쩌민, 쩡칭훙(曾慶紅)이 계획한 두 번째 정변에 참여해 시진핑 당국에 반란을 일으킬 극비 보고서, 소위 ‘정치 핵폭탄’을 작성했던 것이다.

2015년 7월 24일 저우번순 허베이성 서기가 낙마했다. 이는 18차 당대회 이후 재임 중 낙마한 첫 성 위원회 당서기이다. 이는 당시 재직 중이던 장쩌민파 계열 성(省)급 1인자들에게 보내는 강력한 경고이기도 했다.

장웨 낙마

2016년 4월 16일 장웨 허베이성 상무위 및 정법위 서기가 낙마했다.

올해 55세인 장웨는 오랫동안 베이징 공안국에서 재직했다. 중국 공산당 전(前) 수장인 장쩌민이 파룬궁 박해를 본격화한 이후 장웨는 베이징시 공안국 1처(處) 부처장(副處長), 1처 처장, 베이징시 공안국 부국장 등으로 재직하며 장쩌민과 저우융캉의 파룬궁 박해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정치적 ‘자본’을 쌓으려 했다.

2003년 11월, 장웨는 뤄간(羅幹), 저우융캉 등의 발탁으로 공안부 26국(局) 국장직에 임명됐다. 26국은 공안부 내의 파룬궁 박해 전담 조직이다. 2007년 말에는 허베이 공안청장으로 발탁돼 더욱 거침없이 악행을 저질렀다. 그가 허베이성 내 파룬궁 박해를 직접 지휘한 것이다. 장웨는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파룬궁박해추적조사 국제조직(WOIPFG)’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와 있다.

저우번순은 당국의 조사를 6개월 앞둔 시점에서 <허베이 정치상황 통보(河北政情通報)> 초안을 비밀리 작성했다. 그리고 장웨를 통해 직접 쩡칭훙에게 전했고, 장쩌민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이 기밀 보고서에는 주로 시진핑·왕치산(王岐山)의 반부패 운동이 ‘이미 잘못된 길로 들어서 2차 문화혁명으로 변질됐으며, 허베이성 경제를 심각하게 악화시켰다’ 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들은 모든 책임과 문제를 중앙정부 및 시진핑·왕치산의 반부패 운동에 전가시켰다. <허베이 정치상황 통보>는 저우번순이 지시하고 장웨가 인원을 조직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베이 관료계 대격변

저우번순이 낙마하고 일주일 뒤 구이저우(貴州)성 서기직에서 막 퇴임한 자오커즈(趙克志)가 그 자리를 넘겨받았다. 자오커즈는 후진타오(胡錦濤)계 인물로 꼽히며 시진핑-장쩌민의 격전 속에서 시진핑발(發) 반부패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왔다.

자오커즈는 현(現) 리잔수(栗戰書·67) 중앙판공청 주임과도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리잔수 역시 2010년 8월부터 2012년 7월까지 구이저우성 서기를 역임했기 때문이다. 이 기간 동안 자오커즈와 리잔수는 파트너로 활동했다. 리잔수가 중앙판공청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자오커즈가 구이저우성 서기직을 인계받았다.

동시에 허베이성 관료계에 암약한 장쩌민파 세력에 대한 시진핑의 정화 작업도 지속적으로 진행 중이다.

2016년 6월 1일, 쑨바오수이(孫寶水) 허베이 랑팡(廊坊)시 정협 부주석이자 통일전쟁부 부장이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6월 7일, 딩잉후이(丁英輝) 허베이 성 한단(邯鄲)시 상무 부시장이 낙마했다.

2016년 10월 말, 자오융강(趙勇剛) 허베이성 부서기가 해임됐다.

2016년 11월 25일, 량빈(梁濱) 허베이(河北)성 당 조직부 부장이 ‘뇌물수수죄’로 유기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2016년 12월, 탕산(唐山)시 리샤오쥔(李曉軍) 부시장이 심각한 기율위반 혐의로 낙마했다.

2016년 12월 23일, 징춘화 전(前) 허베이성 상무위이자 비서장이 유기징역 18년을 선고받았다.

2017년 2월 15일, 저우번순 전(前) 허베이성 ‘뇌물수수죄’로 유기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2017년 3월, 양제(楊傑) 허베이성 랑팡시 인민대표대회 상무 부주임이 낙마했다.

2017년 4월 11일, 양충융(楊崇勇) 허베이성 인민대표대회 상무 부주임이자 상무 부성장 이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허베이성은 중국의 주요 지역이자 수도권 핵심 요충지이다. 또한 당국의 ‘징진지(京津冀, 베이징·톈진·허베이의 약칭) 협동발전’ 프로젝트의 지휘본부이기도 하다. 시진핑 주석은 허베이 성에서 장쩌민파 세력을 전면 척결하고, 당정(黨政)에서 정법계통까지 자신의 인물들을 전면 등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베이징 정세의 안정을 꾀하며 제19차 당대회 뒤 장쩌민파를 전면 청산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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