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부호가 미국으로 도망치는 사례는 부지기수지만 중난하이의 이번 주인을 걱정하게 만든 건 링완청(令完成)과 궈원구이(郭文貴) 두 사람이 단연 으뜸이다. 앞서 링완청은 형인 링지화가 훔친 2700건의 기밀문서를 건네받아 외국으로 도망쳤지만 아직 행적이 드러나지 않았다.
궈원구이는 중국 정부의 일급기밀을 손에 넣었다고 자처하면서 보쉰 기자와의 인터뷰에 여러 차례 응한 후 종적을 감췄다. 현재 궈원구이의 종적은 확실치 않지만 링완청의 행적은 ‘뉴욕타임스’ 포시드 기자에 의해 만천하에 드러났다. 중국 차이신망은 ‘뉴욕타임스’가 제공한 단서를 토대로 Google 맵에서 여러 장의 사진을 검색해 중국 사람들에게 공개했다.
이미 확인된 세부 내용
아래 세부 내용은 출처를 명기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1. 링완청의 호화주택 상세 내용
포시드 기자는 ‘링지화 동생 미국으로 잠적, 정치적 보호 찾나’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부동산 기록을 살펴보면 링완청은 시에라네바다 산맥 아래 7800제곱피트(약 725㎡)의 주택을 보유했다.”
단 주소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링완청의 호화주택 주소는 다른 기사에서 이미 언급되었다. 올해 3월 7일 중국 ‘시나 해외 블로거’ 야오훙언은 ‘미국 호화주택은 공짜로 줘도 살 수 없다’(blog.sina.com.cn/yaohongen)라는 글에서 이 호화주택의 주소를 폭로했다.
“Wang Cheng으로 검색하면 그가 보유한 캘리포니아 루미스의 부동산을 찾을 수 있다. 소유권(Ownership)을 보면, Li Ping이라는 사람과 함께 각각 50%씩 소유하고 있다. Wang Cheng과 Li Ping은 누구인가? 물론 유명인으로, 누구와 관련됐는지 쓴다면 아마 이 글은 게재하지 못할 것이다. 주택 주소는 6105 Terracina Ct, Loomis, CA 95650으로 루미스는 캘리포니아의 주도 새크라멘토의 동북부에 위치한다.”
야오는 블로그에서 링완청이 미국에서 링완청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Wang Cheng이라는 이름의 비자를 사용한다고 폭로했다. 차이신망의 보도에 따르면 외부 사람들은 링완청이 ‘왕청’이라는 가명으로 사업한 것을 알고 있다고 한다. 그의 아내 리핑은 산시 사람으로 CCTV 앵커 출신이다. 따라서 위의 두 사람은 의심할 여지 없이 링완청 부부이다.
2. 도주 시기는 2014년 9월 이전에 이미 결정했다
올해 8월 4일 차이신망은 이렇게 폭로했다.
“56세의 베이징 상인 링완청은 지난해(2014년) 가을 실종됐다. 당시 일부 소식은 그가 링지화의 아들 링후젠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고 전했다.”
이때 나는 이를 거의 믿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다음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차이신망은 2014년 11월 26일 ‘링완청의 부 이야기’ 기사에서 이렇게 밝혔다. “둘째 형 링정처가 2014년 6월(정확한 날짜는 6월 19일) 중앙기위 감찰부 사이트에 심각한 기율위반으로 조직의 조사를 받은 지 4개월 후 55세의 베이징 상인 링완청도 인신의 자유를 잃었다.” 외부 사회에서는 이 내용을 인용해 그의 ‘해외 도피’를 부정했다. 차이신망이 ‘인신의 자유를 잃었다’고 한 것은 그가 해외에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걸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시끌벅적한 생활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이민생활을 ‘이민 감옥’에 갇혔다고 말하곤 한다.
올해 8월 4일 차이신망은 장위안안 워싱턴 특파원의 ‘링완청 미국 은둔 확인, 캘리포니아에 725㎡ 저택 소유’ 기사를 보도했다. 그중 일부 내용을 보면 링완청 부부가 미국으로 달아난 시간을 추측할 수 있다.
“부동산 판매망에서 발췌한 내용을 보면 링완청 부부는 2013년 9월 250만 달러에 이 부동산을 매입한 후 약 반년 후인 2014년 1월 22일 389만 달러에 매물로 내놓았다. 이후 가격이 떨어지자 팔지 않았고 2014년 5월 23일 매물을 취소했다. 2014년 9월 16일 다시 매물로 내놓았지만 275만 달러에 팔지 않았고 2014년 11월 3일 매물을 취소한 후 더는 팔지 않았다.”
링정처가 6월 19일 조직의 조사를 받은 후 2개월 후인 9월 16일 링완청은 미국에 나타나 부동산 매도를 계획했다.
아직 해결해야 할 몇 가지 퍼즐
1. 링완청이 현재 미국 어디에서 거주하는지 구체적인 소식이 없다
링완청의 현재 종적은 그 자신 이외에 미국 정부의 관련 부문 인사만 알고 있을 것이다. 포시드 기자는 링완청의 전화번호를 근거로 그가 텍사스에 머물 것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뉴욕에서 등록한 휴대전화을 워싱턴에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부서에서 휴대전화의 신호 위치를 추적해 위치를 찾는 것 외에는 누구도 이를 확인할 수 없다.
2. 도주 방식과 사용한 여권이 어느 나라 것인지 불분명하다
링완청이 미국에서 사용한 여권명은 Wang Cheng이지만 보유한 여권이 과연 어느 나라 여권인지 알 수 없다. ‘링완청의 부 이야기’에서는 이렇게 언급했다.
“2003년도 외자기업의 연간보고서에서 링완청은 새로운 이름인 ‘왕청’을 사용했다. 그 이름은 9zonline의 CEO란에서 찾을 수 있다. 10여 년 전 링완청은 ‘외자기업’ CEO가 되었고 수중에 홍콩 또는 다른 나라의 여권을 가지고 있었다. 구카이라이도 싱가포르 국적을 보유했다.”
링완청이 ‘왕청’이라는 별명을 쓰는 건 국안에서도 알았을 것이다. 이 때문에 링정처에게 일이 생긴 후 링완청이 왕청의 여권을 사용해 중국을 떠났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가능성은 세 가지이다. 첫째, 가족의 운명에 먹구름이 낄 무렵 그는 이미 기회를 틈타 국외로 나갔을 것이다. 링완청 부부는 2013년 9월 250만 달러로 부동산을 매입했는데, 이것은 일종의 조치라 할 수 있다. 2012년 링지화가 중반 주임에서 중앙통전부장으로 전임된 후, 링지화의 앞날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정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미리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링정처가 쌍규 처분을 받은 후에도 링완청이 중국에 있었다면 다음 두 가지 방법으로 중국을 떠났을 것이다. 첫째, 국안 계통이 특별한 조치를 취했을 가능성이다. 하지만 당시 활동 여지가 남아 있던 마젠 국안부 부부장은 링지화와 이해관계가 얽힌 인물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가 이런 조치를 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둘째, 거금을 들여 광둥, 홍콩, 미얀마의 밀수 채널을 통해 국경을 빠져나가 미국으로 날아갔을 가능성이다. 이 루트는 주로 돈과 관계되기 때문에 링완청이 진짜 신분을 감춘다면 밀수자가 엄청난 정치 위험을 느낄 필요 없이 처리했을 것이다.
링지화가 손에 넣은 기밀문서의 가치는?
‘뉴욕타임스’ 기사의 관점은 링완청이 휴대한 기밀문서가 중공에 커다란 살상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링완청은 재산과 가족의 지위를 이용해 중국 엘리트 계층 사이를 자유롭게 움직였다. 그는 시진핑의 현재 및 과거 측근들이 불안해할 만한 정보를 장악했을 것이다.”
올해 5월 2일 파광은 ‘링지화, 기밀문서 2700여 건의 절도 혐의로 기소당해’라는 기사에서 보쉰의 소식을 인용 보도했다.
“새로운 조사에서 링지화가 각종 방법을 동원해 전·현직 중국 당 및 국가 최고 지도자의 정보를 수집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국은 링지화가 체포되기 전 중공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등과 관련된 기밀문서 2,700여 건을 훔쳤다. 일부는 그의 친동생인 링완청이 미국으로 가져가 중난하이를 위협하는 카드가 되었다.”
난 이 문서가 얼마나 가치 있을지 약간 의문이 든다. 알다시피 링지화가 운명의 전환점을 맞은 건 2012년 3월 18일 밤에 일어난 유명한 ‘페라리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이후 약 5개월 후인 2012년 9월 초 그는 중반 주임직에서 면직되고 중앙통전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직무의 등급이 동일하지만 권한과 위세는 전혀 다르다. 과거 링은 후진타오의 ‘대집사’였다. 4년 동안 중반 주임을 역임하면서 후진타오 등 최고 지도층이 볼 수 있는 기밀문서는 링지화도 볼 수 있었다. 페라리 사건 전 링지화의 앞날은 탄탄대로였고 신중하고 세심한 링의 ‘야심’은 그저 정치국 위원을 맡는 것이었다.
당시 링지화는 자신이 위기를 맞았을 대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각종 문서를 매일 공 들여 수집할 수 없었다. 문서 수집 행위는 매우 위험해 일단 발각되면 큰 화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링이 중앙통전부장으로 전임된 후에는 모을 수 있는 문서의 범위가 한정돼 자신의 카드로 쓰기에는 부족했을 것이다. 따라서 링지화가 ‘기밀문서를 훔칠 수 있는’ 시간은 2012년 3월 페라리 사건 발생 후 9월 초 중반 주임직을 떠날 때까지 몇 달간이다.
링지화가 훔친 기밀은 군사기밀이 아닐 것으로 추측된다. 군사위원회 문서는 군사주석이었던 후진타오에게 다른 경로로 전달돼 링지화를 거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기밀에는 사이버전 자료가 포함될 가능성도 별로 없다. 사이버전을 담당하는 기관은 총참 3부 미국 및 그 휘하의 6139부대 등 주로 군사 부서여서 링지화는 이런 핵심 기밀에 접근할 방법이 없다. 경제 방면의 경우 전문가가 분석할 만한 자료가 이미 상당히 공개됐기 때문에 그리 큰 기밀은 없을 것이다.
문화 방면의 경우 만약 중공의 국내 언론 통제와 선전에 관한 것이라면 가치가 크지 않아 링도 손대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주로 대외 선전에 관한 자료일 것이다. 그중 언론 명단은 중요하지 않은데 언론의 기사 입장이 자신의 소속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이 있다면 아마 서양국가가 운영하는 중문 언론 및 대학, 연구기관 내의 협력자와 협력방식일 것이다. 정치 방면의 경우 정책을 결정하는 암실의 조작 과정 및 정치 고위층 가정의 기밀자료 등에 불과할 것이고 그중 적지 않은 부분이 이미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따라서 링완청이 ‘중국 최고의 살상력을 지닌 배반자’라고 해도 스노든 사건이 미국에 미친 살상력과 비교할 수 없다. 전체적으로 볼 때 링완청이 보유한 기밀문서는 그저 중국 정부의 ‘체면’과 관련됐을 것이다. 중국은 이 ‘체면’을 모두 ‘국가안전’ 범주에 넣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노든이 폭로한 자료는 미국의 인터넷 안전을 파괴했다. 당시 미국 안전 관료는 스노든이 미국의 인터넷 안전에 거대한 위험에 빠뜨려 안전 시스템을 다시 구축하는 데 거대한 자금이 소요됐다고 밝혔다. 이는 이후 사실로 증명됐다. 중국 해커는 원래 적지 않은 미국 자료를 해킹했지만 스노든 사건 이후 그들은 ‘미국을 휘저으며’ 수백만 건에 달하는 연방 관료 자료를 훔쳤다.
링완청은 어떻게 그의 이야기를 완성할까?
링완청이 어떻게 그의 인생 이야기를 완성할까? 열쇠는 그가 아니라 미국의 태도와 중미 관계에 있다. 이는 포시드 기자가 이미 그의 기사에 언급했으므로 여기에서는 내 관점만 이야기하겠다.
링완청이 가진 정보의 가치는 스노든보다 낮으며 왕리쥔에는 비교할 바가 안 된다. 게다가 미국에 있는 것과 중국 미 영사관에 있는 것은 똑같은 게 아니다. 다만 중미 양측은 이 문제로 싸우지 않을 것이다. 이걸로 교섭해 봤자 결론을 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보’를 미국 측에 넘겼는지에 대해 베이징은 무수한 기밀자료를 가지고 찾아온 스노든을 자신이 어떻게 대우했는지를 생각하면 미국 측이 수많은 기밀문서를 지닌 링완청을 어떻게 대우할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워싱턴은 스노든을 이용한 후 러시아로 ‘인도적’으로 차버린 베이징처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링완청이 중국으로 소환될 경우 스노든이 미국으로 소환되는 것보다 훨씬 참혹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미국은 인도적인 관점에서 링완청이 이런 비극적인 결말에 빠지지 않도록 할 것이다.
8월 5일 화요일에 열린 백악관 정례 기자회견에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링완청이 미국에 은신한 보도와 관련해 “미국은 도망자의 안식처가 아니며 다른 나라의 반부패 행동도 막지 않을 것이다. … 미국은 반부패 방면에 국제적인 선도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전 세계 파트너와 협력해 반부패를 계속 진행할 것이다.”
이 말은 사실상 공을 베이징에게 넘긴 것이다. 그 뜻은 이렇다.
“중국이 충분한 법적 증거를 제시해 링완청이 부패 분자임을 증명한다면 미국은 중국에 협력해 링완청을 돌려보낼 것이다.”
하지만 링완청은 관료가 아니라 기업가이다. 이 상인이 부패로 자산을 모았다는 걸 증명하려면 뇌물수수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당시 링완청의 신분을 보면 관련 부서에 뇌물을 주지 않아도 각종 특권을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링완청의 죄를 증명하는 건 중국에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먼저 사람을 잡아 죄를 씌운 후 고문을 가하면, 무슨 죄는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서양 국가에서는 쉽지 않다. 최근 캐나다 난민국이 중국에서 ‘적색 수배서’를 발부한 100명의 지명수배범 중 하나인 청무양을 송환하려고 하자, 연방법원에서 증거 부족을 이유로 부결한 사건이 그 예이다. 하지만, 링완청은 이후 미국에서 그저 ‘남은 인생’을 보낼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재산이 많아 일반 이민자처럼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중공 정부가 존재하는 한, 전 국안 고위 관료였던 위창성의 사례를 본받아 자신의 행적을 숨겨야 한다. 이 때문에 그는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거나, 당시 중국에서처럼 떵떵거리며 멋진 인생을 살 수 없다. 중국 상업계를 좌우지하던 링완청은 적막한 미국 은거 생활 중 그의 인생을 ‘완성’하겠지만, ‘인신의 자유’는 어느 정도 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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