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 당(黨)문화]제8장 습관화된 당문화 사유(하)

9평 편집부
2007년 09월 15일 오전 11:16 업데이트: 2024년 06월 06일 오후 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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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편:당문화의 구체적인 표현 

【당문화 해체】 제8장 습관화된 당문화 사유(하) 


< 목 차 >

3.당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의식 

4.당문화가 강요하는 습관적인 당팔고 

5.당과 정부, 국가, 민족의 개념을 뒤섞어 

결론: 정상적인 사유로 돌아가자 


3.당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의식

“이런 말들은 앞으로 절대 해선 안 되며 더욱이 밖에 나가 말해선 안 돼!”

“이런 생각은 반동적인 것으로 아주 위험하니 생각조차 하지 마라.”

“주의하라, 이런 위험한 화제는 당신 자신에게 좋은 점이 없다.”

“화제를 바꾸는 것이 어떨까? 이런 문제를 논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당신은 아는가.”

이런 말들은 사람들이 자주 부딪히는 일부 반응들이다. 당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생각에 대해 사람들은 아주 민감하게 여기며 그것을 위험한 금지 구역으로 본다.

1) 도처에 존재하는 “위험의식” 

개혁개방 초기, 대만의 한 역사학자가 중국대륙의 초청으로 학술 교류를 갖게 되었다. 많은 역사학자들 앞에서 그는 공산당이 왜곡한 역사 중에서, 특히 국민당의 항일 역사에 대한 왜곡을 직설했다. 사회자도 역사학자였지만 이 말을 듣고는 황급히 “당신이 말을 할 수는 있지만 나는 감히 듣지 못하겠다.”라고 말했다.

다른 한 명의 대륙학자는 해외에서 파룬궁 수련생 수천 명이 퍼레이드를 하는 것을 처음 보고는 이렇게 자신의 소감을 밝혔다. “나는 즉각 내 정수리에 안테나가 하나 있는 것 같았다. 이 안테나는 허둥지둥 태평양 건너편으로 탐지하는 것을 느꼈다. 무엇을 탐지했는가? 나는 대륙의 각종 금기와 규격을 탐지했다. 나는 내가 하는 매 하나의 글자가 귀국 후 가져다 줄 번거로움을 고려했다. 그 시각 나는 입과 다리가 모두 떨리고 있음을 느꼈고 특히 한 중국인으로서 말하는 것에 난처함을 느꼈다.”

2004년, 캐나다의 한 시민단체에서 장쩌민을 심판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조직위의 한 사람이 어느 노인에게 와서 구경할 것을 청했다. 전화에서 노인은 한참 생각한 후 자신은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왜냐고 묻자 “난 (중국에서) 나온 지 17-8년이지만 중국에 돌아간 적이 없다. 나는 남은 생에 한번 귀국하려 하는데 누가 만약 나를 발견하여 일러바치면 나의 이번 생은 끝이다.”고 대답했다. 그는 이미 76살이었고 캐나다에서 생활한 지 16년이나 지났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진정한 자유가 없었다.

한 여자 관광객이 홍콩에서 『9평 공산당』에 관련된 자료를 보고 난 첫 번째 반응은 “어이구, 이 사람들 정말로 담이 크네. 이런 “반동”적인 말을 하다니. 국내였다면 벌써 잡혀갔을 거야.”였다. 사람들은 이런 정보가 중공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중국에 있지 않음에도 여전히 위험의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고 “본능”적으로 회피했다.

사람들은 고압선, 무단횡단, 화재, 뱀 등 이런 것이 위험함을 알기에 이런 것이 나타나면 위험의식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것은 유형적인 것이라 두려워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유형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은 종종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는 훨씬 못 미친다. 공산당이 사회를 통제하는 가장 극단적인 표현은 바로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무형이지만 어디에나 없는 곳이 없는 검찰관들이 수시로 사람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게 한 것이다. 당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생각은 매 개인의 의식 속에 아마 모두 나타날 수 있다. 일단 이런 위험의식이 생기면 사람에게 어디든 도망갈 수 없다는 극도의 무력감과 절망을 가져다준다. 나타날 결과에 대한 예측과 더불어 스스로 자신에게 겁을 주어 이런 위험의 공포를 가중시켰다.

현재 가장 전형적인 표현은 바로 소위 말하는 “정치를 한다”는 죄명에 대한 공포 심리이다. 중화민국을 세운 손중산(孫中山) 선생의 말에 따른다면 정(政)이란 본래 많은 사람들의 일이고 치(治)란 바로 관리인바 정치란 많은 사람들의 일을 관리한다는 것이다. 중국 역사상 학식이 있고 우수하면 벼슬을 한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학식과 능력이 있는 사람은 마땅히 나라를 다스리는 우수한 인재로 되어야 하고 이는 또한 가문을 빛내는 일로 보았다. 중국 역사상 많은 유명한 정치가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제갈공명, 당태종 이세민 등인데 “정치가”라는 말에는 줄곧 좋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인들을 말하자면 정치란 말만 들어도 아마 반감을 갖거나 심지어 공포를 느낀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정당한 권익에 대한 요구가 있거나 사회현상과 정책에 대한 의견이나 공산당에 대해 담론하기만 하면 중공에 의해 “정치를 한다”는 모자가 씌워진다. 중공은 “정치를 한다”는 말로 아주 쉽게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함부로 공격할 수 있는 죄명을 뒤집어씌워 사람들에게 누명을 쓴 사람이나 단체에 대해 위험하다고 느껴 멀리 피하게 만들었다.

역설적인 것은 비록 중국인들이 정치를 위험한 것으로 여기긴 하지만 사람들은 시시각각 정치 속에서 생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중공의 일체 일은 정치가 우선이다. 학생 때의 사상 교육에서 시작해, 대학, 취직, 군 입대에 이르기까지 정치적인 심사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한 사회사건에 대해서 태도 표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40년 전 집에서 채소를 몇 포기 심거나 닭 몇 마리를 길러도 모두 정치적인 문제가 되어 “자본주의의 꼬리”를 잘라야 했다. 역대 운동 중에서 형세에 따르지 않고 “정치사상 진보에 소극적인” 사람은 늘 사회적으로 냉대하는 대상이 되었다. 중공이 반대하는 것은 정치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 당과의 일치를 유지하는가 여부였다. 당과 일치할 때는 아무리 크게 정치를 해도 정확한 것이고 당과 일치하지 않을 때는 정치적인 일이 아니라도 “정치를 한다”는 모자를 뒤집어 써야 했다.

2)당문화가 조성한 마음의 감옥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강아지는 호랑이를 본 적이 없기에 자연히 호랑이의 위험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많은 중국인들은 중공의 박해를 직접 받지는 않았지만 이런 사유는 사람마다 거의 다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당문화가 중국인들에게 당 관념에 부합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의식이 생기게 하여 중국인들에게 마음의 감옥[心牢]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볼 때 “위험의식”은 “두려움”에서 내원한다. 사람이 머릿속에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다른 사람은 잘 모르는데 왜 두려워하게 될까? 왜냐하면 사람의 언론과 행위는 사람의 사상이 통제하기 때문이다. 만약 사상 중에 당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 폭로되거나 누설되어 중공의 숙청을 받지 않을까? 역사적으로 이런 손해를 본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당과 일치하지 않는 생각이 감히 존재하는 것조차 두려워하며 자신을 단속하려 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있어서는 안 된다. 전 사회가 이런 환경을 만들었고 역으로 이런 환경은 사람들의 “위험의식”을 강화했다.

당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의식은 중공의 장기적인 사상주입과 고압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중공은 당을 만든 이래 주기적으로 살인하고 탄압하며 운동을 전개해 왔다. 그 목적은 민간의 두려운 기억을 강화하고 중공 정권을 확고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중공 역사상 여러 가지 잔혹한 탄압수단은 사람들에게 심각한 공포 심리를 조성했다. 중공은 일체 자원을 통제하고 중국인들의 생사여탈권을 장악해 권력을 잡았으며 그것의 박해수단에는 한계와 예측범위가 없었다. “당”과 견해가 다른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경제, 명예, 심령(心靈), 육체, 생명 등 여러 방면에서 억압과 탄압을 받았다. 공산주의를 믿지 않거나 의문을 품고 공산당 일당독재에 불만을 갖고 비평하는 사람은 “반(反) 혁명죄”란 중죄를 뒤집어써야 했다. 심지어 중공 고위 간부라 할지라도 만약 다른 의견을 가졌다면 살벌한 숙청을 당해야 했다.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 중공은 여전히 고압통치, 특무(特務)통치와 마피아식 통치를 실시하고 있다. 그 수단으로는 자유 언론을 봉쇄하고 사람들의 말을 도청하여 문자옥(文字獄)을 실시하는 것, 아무 근거 없이 날조한 죄명으로 신앙과 언론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나 합법적으로 항의하는 군중들을 체포하고 감금하기, 해외에서 귀국한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국가 자원을 위협해 해외로 침투하는 등이다.

“집에서 접속할 때도 미리 보고해!” : 중국은 인터넷 감시 경찰만 30만 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감시국가이다. | 에포크타임스

사람들 사이의 경계심도 사람들의 공포 심리를 가중한다. 사람들은 나중에 누가 자신을 해치고 자신의 비밀을 누설할지 모르며 감시하는 눈은 도처에 없는 곳이 없다. 때로는 자신의 적이고 때로는 자신의 친구일 수 있으며 심지어 자신이 목숨 바쳐 구해준 사람일 수도 있다. 밀고는 중공 통치하에서 일종 독특하면서도 야비한 문화경관이 되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당과 일치하는 방법을 채용하며 조금이라도 “민감”한 화제에 대해서는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감히 드러내지 못한다.

그리하여 당문화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중공의 사상으로 문제를 고려하고 중공의 속셈을 탐구하며 중공의 관념을 터득한다. 표현되는 형식으로는 우선 자신이 중공이라고 가정하고 중공과 일치를 유지한 후 무엇이 현재의 당 관념에 부합되는지 판단하고 이 규칙에 따라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각을 가늠한다. 자신에 대해 스스로 땅에 동그라미를 그려 감옥을 만들고 당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생각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며 심지어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다른 사람이 “민감”한 화제를 이야기할 때면 제지하거나 말하지 말 것을 권한다. 더 심한 경우에는 직접 신고하거나 알려 당이 직접 나서 같지 않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박해하도록 한다. 외국에 나가 당의 통제가 없는 환경에서도 중국인들은 여전히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며 기계처럼 당의 명령에 복종한다.

중국인들이 생존을 위해 스스로 만든 감옥.| 에포크타임스

3) 민족을 해치는 “위험의식” 

당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의식이 존재하여 자동적으로 당과 일치하는 사유를 유지하게 되면 사람들은 곳곳에서 조심스러워지고 비겁해지며 굽실거림으로 권력자와 상사의 총애를 얻는데 습관이 되어 마치 노예처럼 살아가면서 사람의 존엄을 철저히 상실했다. 6.4 때 행진에 참가했던 한 교수가 든 현수막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너무 오래 꿇어앉아 있었다. 이제는 일어나 걸어보자.” 보아하니 중국인들은 오랫동안 노예 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반항할 기운조차 없어진 것 같은데, 다 걷고 나면 다시 돌아가 꿇어앉자고 한다. 비참한 사실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또 다시 꿇어앉았다는 것이다.

중국 전통문화는 사관(史官)정신을 강조한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대신 최서(崔抒)가 그 임금을 살해하자 사관은 임금을 시해했다고 사서에 기록했다. 최서가 이 사실을 알고 사관을 살해했다. 그러나 두 번째 사관 역시 이렇게 기록했다. 두 번째, 세 번째 사관 역시 살해당했지만 다른 사관들은 여전히 견지했다. 이것은 일종의 절개이자 한 민족이 장구하게 생존할 수 있는 정신적인 핵심으로 또한 중화 민족의 영혼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공의 당문화 주입과 박해수단은 도리어 이런 정신을 무자비하게 훼멸했고 지식인들을 협박하거나, 매수하여 중공을 도와 나쁜 일을 하게 했으며 더 많은 거짓말을 만들어 민중들을 기만하게 함으로써 중공의 독재통치를 수호하게 했다.

고대 중국인들은 또 “부귀가 방탕하게 할 수 없고, 위무(威武)가 지조를 굽히게 할 수 없으며, 가난하고 천하다 하여 절개를 움직일 수 없다(富貴不能淫,威武不能屈,貧賤不能移 역주: 맹자 등문공장구하)”는 대장부의 기개를 강조했다. 역대 왕조에 강권(强權)을 두려워하지 않고, 권세를 무시하며, 존엄과 가치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것조차 아랑곳하지 않은 사람들이 적지 않게 나타났다. 서양 사회에도 “자유가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달라”라는 명언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중국에서는 중공의 폭정과 당문화의 주입으로 중국인들의 용기는 전대미문의 쇠망을 가져왔고 이를 대신한 것은 끝없는 두려움과 공포였다.

그리하여 중국 고대의 민족적 존엄은 사라졌고, 한 민족이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말살되었다. 누군가 중국은 일찍부터 망국의 노예이며 식민지라고 말하였다. 그렇다. 1949년부터 중국은 사실 정신적으로 나라를 잃은 셈이다. 공산당은 중국의 민족정신을 말살했고 건립한 것은 “신중국”이 아니라 정신에서 육체에 이르기까지 잔혹한 전제제국(專制帝國)이었다.

한 유명한 맹인 작가가 일찍이 “내 몸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내 마음은 자유롭다.” 정상적인 사회에서 정상인은 여러 가지 가치관과 사유방식이 있을 수 있어 선택할 권리가 충분히 있으며 생활은 풍부하고 다채로워 사람들은 자기 생활의 주인이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인들은 비록 먹고 마시고 섹스와 도박의 자유는 있지만 자신의 정신적 보금자리는 잃어 버렸다. “위험의식”은 중국인들을 스스로 사상 감옥 속에 감금했고 “당”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일률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심지어 두려워하며 회피한다. 이렇게 엄밀한 체계에서 살아온 중국인들은 당이 준 사유체계 이외의 것을 생각하기란 매우 어렵다. 자신의 마음 감옥에는 당문화와 중공 관념의 것들만 들어 있어, 그가 세계를 보는 방식 역시 자기 틀 속의 고만한 것만 있다. 중국인들은 당문화에 입각한 사유 속에서 당문화의 정신적 노역(奴役)을 받으며 사상의 자유와 흥취를 잃었으며 인생은 중공을 위해 사는 것으로 변해 버렸다.

4) 무형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신의 두뇌를 주재해야 

우리는 반드시 한 가지 기본적인 상식을 똑똑히 알아야 하는데, “위험의식”이라는 생각은 현대 법치주의 정신을 직접적으로 위배한 것이다. 그 어떤 문명국가든지 막론하고 법률이 징벌하는 것은 모두 사람의 범죄 행위이지 절대로 사람들의 사상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법률은 한 사람이 무엇을 했는가에 따라 그를 징벌하는 것이지 절대로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했는가에 따라 그를 징벌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생각이 아주 위험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마땅히 이것은 사상으로 징벌하는 중공의 야만적 작법의 후유증임을 의식해야 한다.

“당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의식”과 같은 이런 습관적인 당문화 사유, 이런 위험의식은 비이성적이며 근거가 없는 것이다. 사람의 머리는 자신이 지배해야 하고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독특한 생각이 있게 마련인데 공산당도 그를 어떻게 할 순 없다. 주관적인 의도를 말하자면 공산당은 확실히 모든 사람의 사상을 통제하려 한다. 하지만 공산사령이 가장 창궐할 때에도 이 목표는 완전히 실현되지 못했다. 오늘날, 민중들의 사상을 통제하려는 공산당의 염원은 전례 없이 강하지만 그것의 통제능력은 전례 없이 허약해졌다. 중국인들은 중공이 조성한 그런 무형의 두려움 속에서 걸어 나와야 하며 또한 이런 무형의 공포 속에서 꼭 걸어 나올 수 있다. 공산당에 대한 비이성적인 공포심에서 벗어나야 하며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공포에서 벗어나야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의 존엄을 되찾을 수 있으며 비로소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

4.당문화가 강요하는 습관적인 당팔고 

“×××의 선진적인 사적(事迹)과 숭고한 정신을 참답게 따라 배워 ×××를 끊임없이 유지발전시키며, 전국 각 민족 인민을 단결하고 이끌어 ×××의 위대한 길에서 용감하게 전진하자.”

“×××의 장기성, 복잡성, 어려움을 깊이 인식하고 ×××의 사업을 ×××의 중대한 전략임무로 삼아 꾸준히 틀어쥐고 한 시각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전당(全黨) 동지들은 ×××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 주위에 더욱 굳게 뭉쳐 ×××를 지도로 하고 ×××를 전면적으로 관철하여 전면적으로 ×××를 건설하고 ×××를 끊임없이 개척하기 위해 계속 노력 분투하자.”

이상은 중공 당 대회 보고 중에 나오는 말들이다. 이와 같이 내용 없이 상투적인 말뿐인 당팔고(黨八股) 식 언어는 중공의 각종 회의, 라디오, 텔레비전, 신문잡지에 모두 등장한다. 당팔고는 중공 관리들의 전형적인 언어체계이지만 당팔고 식 말은 관리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민간에도 널리 퍼져 있다. 정부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당팔고 식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미 습관적인 사유방식이 되었다.

여기서 지적할 것은 중공 두목 마오쩌둥이 일찍이 『당팔고 반대』란 글을 쓴 적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의 진실한 의도는 당팔고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이용해 “걸핏하면 희랍”을 언급하는 현학적인 말을 한다는 구실로 당내에 남아 있던 러시아 유학파 공산국제파를 빗대어 말하고 공격하려는 것이었다. 특히 마오쩌둥이 당내 최고 지도권을 탈취하는 데에서 가장 큰 장애였던 왕밍(王明)이었다. 바꾸어 말한다면 마오가 반대한 것은 당팔고 자체가 아니라 자기 방식의 당팔고로 다른 방식의 당팔고를 대체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문화혁명 가운데 전 중국인들이 모두 『마오쩌둥 저작선』을 미친 듯이 읽고, 『마오쩌둥 어록』을 미친 듯이 외우며 『작은 紅書』를 미친 듯이 흔들었음에도 마오쩌둥이 왜 더는 “당팔고 반대”를 제기하지 않았는가 하는 이유이다.

마오쩌둥이 반대한 것은 당팔고 자체가 아니라 자신과 다른 방식의 당팔고였다. | 에포크타임스

1) 수시로 나타나는 습관적인 당팔고 언어 

매번 무슨 대회를 할 때마다 반드시 정치태도를 표시해야 하는데 당의 견강한 핵심을 떠날 수 없고, 무슨 주의, 무슨 사상, 무슨 이론, 무슨 관(?)을 떠날 수 없다거나 혹은 역사는 무엇 무엇이 정확하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등의 공허한 말을 해야 한다. 또 누구누구의 영도를 견지하며, 무슨 사상을 지도로 하여, 무엇으로 군중을 무장시키고, 어떤 특색이 있는 길을 따라 전진하자거나, 혹은 누구누구 주위에 굳게 뭉쳐 무슨 기치를 높이 치켜들고 무슨 사업을 위해 더욱 큰 공헌을 하자는 따위의 호언장담이다.

매번 지도자가 연설을 하면 “중요한 연설”이라고 맞장구치면서 연설하는 사람의 지위를 부각시키고 연설내용을 의식적으로 치켜세워 한 무더기 좋은 말을 하는데 이를테면 무엇을 깊이 있게 설명했다거나 무슨 중대한 반향을 일으켰다거나 무슨 중대한 의의를 가졌다는 등이다.

상급을 대표해 연설하면 반드시 당중앙에서 아주 관심을 갖고 있으며 고도로 중시하고 있다는 말을 해야 한다.

관리가 사망하면 전형적인 추도사는 바로 모모(某某) 동지의 일생은 혁명적이고 전투적인 일생이며 무슨무슨 사업을 위해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한다.

관리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꼭 무슨 이론을 빗나갔고, 당의 무슨 정신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꼭 더욱 잘할 것을 결심한다고 표시해야 한다.

표창을 받으면 당의 양성에 감사드려야 하며 조직의 관심과 애호를 떠날 수 없으며 최후까지 무슨 사업을 위해 더욱 큰 공헌을 하겠다는 것을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사회에서나 당내에서 무슨 상황이 나타나면 반드시 “극소수”, “지극히 개별적”, “한 줌도 안 되는 무슨 분자”라는 것을 더해야 한다.

국제사회에 대한 견해는 늘 “우리는 마땅히 서양 모모 세력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이다.

이외에도 또 천편일률적인 말이 있는데, 모모(某某)를 지도로, 모모를 기초로, 모모를 동력으로, 모모를 보증으로, 모모를 목표로, 모모를 수반으로 따위이다. 지도자의 연설은 거의 전부 이러하며, 틀에 박힌 산더미 같은 말로 심각함과 전면성을 과시한다.

또 정치를 바짝 따르는 선전구호가 있는데 입만 벌리면 무슨 “3강”, “세 가지 대표”, “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린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사회주의 초급단계”, “가난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안정이 일체를 압도한다”, “삼단계 발전 전략1)”, “현대화에 직면하고 세계에 직면하며 미래에 직면하자”,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일국양제”, “개혁개방을 견지하자”, “네 가지 기본 원칙 견지”, “시대와 함께 전진”, “조화사회” 등이다.

어떤 사람이 중국에서 사용되는 “상투적인 말을 집대성”해 보았다. 이 중에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성대하지 않은 회의가 없고, 승리하면서 폐막하지 않은 회의가 없으며, 중요하지 않은 연설이 없고, 통과되지 않는 결의안이 없으며, 열렬하지 않은 박수가 없고, 지도자가 중시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불친절한 사람이 없으며, 순조롭게 진전되지 않는 것이 없으며, 원만하게 완성되지 않은 것이 없고, 성적은 거대하지 않은 것이 없고, 사업은 착실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효율이 현저하지 않은 것이 없고, 인심이 분발되지 않는 것이 없으며, 지도부가 단결되지 않는 것이 없으며, 만족하지 않는 군중이 없다는 등이다. 이 모든 것이 전형적인 당팔고 언어이다.

문장의 결말을 쓸 때면 “우리는 ××의 노력으로 ××가 반드시 어떻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한다.

문예오락, 일상생활 가운데도 당팔고 식 말이 넘쳐난다.

『4랑이 모친을 찾다(四?探母)』는 중국의 유명한 경극(京劇)인데, 중국 경극원 건립 50돌을 경축하는 경전극 프로그램 출연 CD에 놀랍게도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반세기 이래 중국 경극원은 당의 문예 방침의 지도 아래 앞 사람들의 사업을 이어받아 낡은 것은 몰아내고 새로운 것을 내세우면서 인민 군중들이 좋아하는 우수한 전통과 현대 경극들을 창조하고 연출하여 한패의 예술인재를 양성했다. 중국 경극원은 국가 급 예술 단체로서 민족 예술을 계승하고 민족정신을 발양하며 사회진보를 추동하고 중외(中外) 문화 교류를 촉진하는데 적극적인 공헌을 해왔다.”

『4랑이 모친을 찾다』라는 작품이 창작된 것은 몇백 년 전의 일이며 경극 무대에서만 근 2백년을 불러 왔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도 쇠약해지지 않았다. 이 공연이 성공한 원인이라면 극본이 훌륭하고 연기가 훌륭한 것이지 중공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반대로 경극은 중공의 참혹한 박해를 받았다. 경극계의 4대 수생(須生2)) 중에서 마롄량(馬連良), 시샤오보(奚嘯伯), 저우신팡(周信芳), 4대 명단(名旦3))중의 쉰후이성(荀慧生), 상샤오윈(?小雲), 저명한 무생(武生4)) 가지자오톈(蓋叫天) 등이 모두 박해를 받았다. 때문에 이런 말은 사실 전통의 경극 경전에 대한 모독으로 배후에 반영된 것은 당국에 아첨하고 당팔고 식으로 사유하는 말이다.

차오차이(潮菜5))는 중국에서 이미 몇천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중국정종차오차이(中國正宗潮菜)』요리책 서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신(新)중국이 건립된 후 차오차이 요리에는 또 새로운 발전이 있었다. 특히 최근 십몇 년 간 개혁개방의 봄바람이 차오산(潮汕) 지역 경제에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중략…. 오늘날 차오차이는 이미 흥성 발전하는 시기에 들어섰다.” 정종 요리라고 한 이상 당연히 구미나 메뉴가 오래된 것일수록 좋고 전통적일수록 더욱 좋을 텐데 무엇 때문에 개혁개방의 봄바람이 가마 속까지 들어가 차오차이가 “흥성 발전하는 시기”에 들어갔다고 하는지 모를 일이다. 여기에 반영된 것 역시 마찬가지의 당팔고 언어이다.

당팔고 언어가 좋지 않다는 것은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누구나 다 혐오감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이렇듯 자주 당팔고 언어를 사용하는가?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수치스러운 줄도 모르고 도리어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이것이 현대적이라고 느낀다. 그 배후에 반영된 것은 도대체 어떤 심태인가?

2) 당팔고 언어를 말하는 배후의 심태 

당팔고 언어의 배후에는 일종의 공포심이 감춰져 있다. 사람들에게 당팔고를 말하는 사유가 형성되면 시시각각 도처에서 당팔고 말을 하게 되는데, 어떤 의미에서 말한다면 당국에 자신은 독재 질서에 복종하며 그 어떤 반항의도도 없다는 것을 고백할 뿐이다. 중공의 전제 아래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독립적인 사상과 자유로운 언론이 언제 자신에게 좋지 못한 후과를 초래할지 모르며, 심지어 살해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당에서 한 말을 반복하는 것은 곧 일종 가장 좋은 방어수단이 되어, 당이 사용했던 어휘 이외의 것을 사람들은 감히 함부로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당이 무슨 말을 했으면 반드시 “형세를 바싹 따라야” 하는데 이래야만 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스스로 당팔고 언어를 말하면 최저한도로 정치적으로 정확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트집을 잡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높은 곳에 서서 다른 사람을 공격할 수 있다. 이러한 공포심리야말로 사람들이 당팔고를 말하는 습관적 사유를 양성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다.

당팔고 말을 하게 된 것 역시 중공이 강제로 주입한 결과이다. 신문, 텔레비전, 라디오, 지도자의 연설, 곳곳에는 당팔고 어휘로 가득 차 있으며, 또 각급 관료부문에서 발행하는 “브리핑”, “내부참고소식”, “통신”, “정보”에는 당팔고 언어가 더욱 많다. 장기적인 주입을 통해 이런 어휘들이 사람들의 사유를 차지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언어로 사실이나 혹은 자신의 생각을 진술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이런 어귀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당팔고 언어의 위험성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앵무새가 말을 배우듯이 공산당이 뭐라고 말하면 곧 뭐라고 말한다.

당팔고를 말하는 것은 또한 중공의 당문화 언어체계로부터 결정된 것이다. 당문화 속에는 공덕을 찬양하고, 아첨하며, 정치태도를 표시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중공 정계의 3대 특색이 되었다. 바로 제6장의 “습관화된 당의 언어”에서 분석한 것처럼 중공의 당 언어는 폭력 조직에서 신분을 감별하는 것과 같은 작용을 한다. 당팔고를 말할 줄 아는 것은 중공이란 방파의 구성원들에 대한 기본요구로서 그 구성원이 벼락출세 할 수 있는 통행증이다. 당팔고를 말하지 않는 사람은 이 테두리 속의 사람이 아니며, 믿을 수 없으므로 배척당하고 공격받는다. 사람들은 남을 속여 명예를 훔치려 하며 위로 뚫고 올라가려 한다. 혹은 단지 틈새에 끼어 구차하게 생존하기 위해 모두 어쩔 수 없이 당팔고를 말하게 된다. 또 어떤 사람은 당팔고 말을 해야만 중공 통치사회의 “주류”에 부합할 수 있다고 여기면서 언제 어느 곳에서나 당팔고 말을 몇 마디씩 하는데 자신이 시대의 흐름에 부합했고 재주가 있음을 과시한다. 다른 사람들도 그가 말을 잘한다고 여기면서 탄복한다. 이리하여 이런 습관을 심화시켜 전 사회에 이런 생활 방식이 형성되게 했다.

3) 당팔고의 독해 

습관적으로 당팔고를 말하는 것은 당문화 사유가 가져다 준 엄중한 후과(後果)이다

당팔고 언어에 대한 사람들의 전파는 마음을 어긴 것이든 풍자든 상관없이 모두 당문화가 사람들의 생활과 생존의 일부분으로 되게 했다. 때문에 중공에게 끊임없이 생존환경을 마련해 주게 되었으며, 중공 사교(邪敎)를 수호하는 작용을 일으켰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당문화 언어 체계를 사용하는 자체가 바로 중공의 요소를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바로 중공이 생존할 수 있는 마당을 강화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당팔고를 말하는 사유는 또한 중국인들이 국제사회와 소통하는데 어려움을 초래했다. 당팔고 언어가 반영하는 것은 위선적인 마피아 문화로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언어 소통을 어렵게 했다. 다른 국가의 사람들은 중공 지도자와 회담할 때면 일련의 당팔고 말들을 듣고는 늘 이해할 수 없어 하며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망연해 하면서 이렇게 큰 나라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고, 무엇 때문에 십몇 억이나 되는 사람 가운데서 정상인의 말을 절반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 나라를 관리하지 못하는지 의아해한다 .

동시에 사람들이 당팔고의 말을 하는데 습관될 때면 어쩌면 당문화 요소가 이미 사람들이 독립적인 말을 하는 것을 제거하고 독립적인 인격을 살해했으며 자기 생활을 개변시킬 능력을 없애버렸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중공이 아무리 온갖 나쁜 짓을 다하든 상관없이 중공의 당문화 언어 체계는 사람들의 사유를 아주 쉽게 통제할 수 있으며, 사람들의 판단 기준을 왜곡하는 동시에 자신의 죄책을 덮어 감춘다. 결국 아주 많은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중공을 위해 변호하는 것이 조성되었다. 때문에 중공이 어떻게 매 차례 중화 민족에게 침중한 고난을 초래했든지, 어떻게 여러 차례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든지 상관없이, 중공은 중화민족에 대한 부체와 중국인들에 대한 언어 통제를 통해 마치 가위에 눌린 사람을 장기적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할 수 있었다.

중공 사령(邪靈)이 사람들의 몸에 달라 붙은 부체(附體). | 에포크타임스

4) 언어 감옥을 돌파하여 자유를 회복하자 

한 사람의 언어는 그 정신세계의 반영이다. 언어는 반대로 또 사람의 정신세계를 형상화한다. 당팔고 언어가 반영하는 것은 일종의 위선적이고 추악하며 경직된 병태심리이다. 당팔고 말을 하는데 서서히 습관되는 과정은 바로 서서히 자유로운 사상과 인격의 독립을 버리는 과정으로서 바로 서서히 당문화의 강시(?尸)가 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성실하고 온화하며 너그럽고 자유로우며 생동하고 우아한 언어는 아름다운 내심세계를 반영하는 동시에 자유로운 사유습관과 풍부하고 다채로운 개성을 양성하는데 도움이 있다.

당팔고와 고별하고 우리의 언어와 마음을 속박하는 감옥과 고별하자. 이렇게 해야만 중국인들의 지혜가 진정으로 발휘될 수 있으며 중국사회는 다시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5.당과 정부, 국가, 민족의 개념을 뒤섞어 

공산당이 정권을 탈취한 후, 조대(朝代)가 바뀐 것을 “건국(建國)”이라 부르고, 이어서 “구세주”와 “창립자”의 자태로 중화 대지에서 수십 년간의 선전을 주입했다. 마치 중국의 5천년 역사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은 것 같다. 이에 정부는 당이 창건하여 영원히 변경되지 않는 정부가 되었고, 국가는 당이 창건했기에 평생 지도하는 국가가 되었으며, 민족은 당이 구제하고 무조건 대표하는 민족이 되었다. 공산당이 없다면 정부는 무정부가 되었을 것이며, 국가도 없고 민족은 망국의 노예가 될 것 같다. 당은 자신에게 “지고무상”의 권위를 규정했고 “정부”, “국가”와 “민족”의 위에 군림했다.

당의 통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중공은 사회운행과 중국인 생활의 모든 면을 엄밀히 통제했다. 당 기구는 중공 중앙에서 가난한 시골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며 하려고 하면 살인방화부터 천지와 투쟁하는데 이르기까지 하지 못할 일이 없다. 가령 명절, 혼인, 여자들이 몇 명의 아이를 낳는 일까지 당이 관할하지 않는 것이 없다. 당이 이르는 곳에서 “정부”, “국가”와 “민족”은 당의 손아귀에 있는 꼭두각시로 변했고 당을 위해 봉사한다.

오늘날 많은 중국 민중들은 당과 정부, 국가와 민족은 서로 별개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며 이치는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당의 그림자가 너무나 짙게 드리워져 있고 너무나 미시적이라 “당”은 중국인들의 운명에서 풀어버릴 수 없는 주문이 되었다. 가장 관건적인 문제는 바로 공산당을 떠나 정부를 담론하거나 이 나라를 수호한다거나, 이 민족의 번영을 말하는 것은 이미 그 무슨 실질적인 의의가 없어졌고 마치 물을 떠난 고기를 논하듯이 허튼짓을 한다고 여긴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당, 국가, 정부, 민족 등 개념의 이론을 경험의 범위 내에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하게 만들어 국가와 민족에 대한 민중의 정서를 죄다 당에 대한 정서로 전이시켰다. 때문에 반당(反黨)은 곧 반정부이며,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며 반(反)중국이고 매국이며, 중국인의 체면을 깎는 것이자 민족에게 먹칠을 하는 것으로 되었다. .

1) 당이 바로 “일체” 

(1) “친애하는 엄마”로 자처 

공자는 “효도와 공경은 어짐을 행함에 기본이다!(孝悌也者,其?仁之本歟!)”라고 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윗사람을 잘 공경하는 것은 중화민족의 전통 미덕으로 효도 중에서도 모친에 대한 효성이 가장 두드러진다. 공산당은 바로 자신을 모친에 비유하며 심지어 모친보다 더 가까운 친인으로 비유해 민중들의 온갖 효도와 순종을 얻었다. 자식은 모친이 아무리 추하게 생겨도 싫어하지 않는 법이다. 공산당이 아무리 나쁘다 해도 사람들은 당의 형상을 기꺼이 수호하려 한다.

(2) 인민을 양육한다고 자칭 

당은 농사도 짓지 않고 천도 짜지 않는데 어떻게 인민을 양육할 수 있겠는가? 반대로 인민이 당을 양육하고 있으며 “납세자”들의 돈으로 공산당을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산당은 국가기구를 통해 전 중국인들의 재산과 사회자원을 통제하고 있으며, 전 중국의 재산을 “함께(共)”했다. 원래 중국인들에게 속했던 물건을 빼앗아 다시 국민들에게 약간을 “베풀어”주자, 사람들은 자연히 당이 자신을 학교에 보내 주고, 직장을 배치해 주었으며, 애인을 소개해 주었고, 집을 배분해 주었으며, 퇴직금을 주었다고 여긴다. 장기적인 봉쇄와 주입으로 조성된 모친 정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본말(本末)이 뒤바뀌게 했으며 “공산당이 아무리 나쁠지라도 필경 나를 키워준 은혜가 있다”고 보편적으로 여기게 했다. 사실은 정반대이며 정상 사회에서는 사람마다 공부하고 일하며 결혼하고 자립하는 것을 어느 당의 공로라고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자신이 노동과 대가를 치르고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얻은 것으로 이것이 바로 정상적인 생활 상태이다. 중국인들의 생활이 개선된 것은 절대로 공산당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며 자신의 근로에서 온 것이다. 아울러 공산당의 착취와 압박이 없었다면 중국인들의 생활은 틀림없이 지금보다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공산당이 없는 나라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고 훌륭한 직장이 있으며 더욱 큰 집에서 살며, 더 많은 퇴직금을 받고 있지 않은가?

(3) 당이 밥그릇을 통제 

물론 중국인이라고 하여 누구나 다 이 외부에서 들어온 사악하기 그지없는 ‘모친’을 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철(鐵)이요, 밥은 강(鋼)이라 사흘만 밥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파 허둥거린다.” “당 엄마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대의를 위해 친족을 멸하는’ 방법을 써 왔다. 밥을 주지 않는데 당신이 어떻게 하겠는가? 중공은 ‘개혁개방’ 전에 일체 생산 자료를 독점했고 어떤 사람이든 일자리를 찾으려면 모두 당을 찾아가야 했다. 때문에 사람들에게 일종의 착각을 심어주었는데 마치 당이 그에게 직장을 찾아준 것 같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당이 원하기만 하면 그것은 아무런 이유도 말하지 않고 우리의 밥그릇을 빼앗아 갈 수 있다. 이는 사람들에게 당은 원래 우리의 밥그릇을 빼앗아 갈 수 있지만 놀랍게도 빼앗아 가지 않았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곧 당에 대해 ‘감지덕지’하면서 밥그릇을 당이 주었다고 여기고 도리어 ‘원래 당이 우리의 밥그릇을 빼앗아 갈 수 있다’는 이 전제 자체가 그릇된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심리학적으로 말한다면, 당이 밥그릇을 더 단단히 지배할수록 사람들은 당이 자신의 기본적인 생존을 더 보장해 주었다고 여기게 된다. 인민은 밥그릇을 떠날 수 없기에 사람이 당과 밥그릇을 동등한 위치에 놓을 때면 ‘반당’은 곧 ‘반 인민’이 된다.

(4) 당은 ‘선진’을 대표

공산당은 ‘선진분자’와 ‘낙후분자’를 구분하는 것을 좋아한다. ‘낙후분자’는 투쟁의 대상이고 당원은 반드시 ‘선진분자’이며 ‘선봉대’이고 사회의 ‘엘리트’이며 ‘선진적 생산력’, ‘선진적 문화’를 대표한다. 이리하여 당은 국가와 민족의 ‘동량’, ‘미래’, ‘방향’이 되었다. 이렇듯 허울 좋은 선전 공세 하에서 악당은 ‘좋은 사람’이 되었고 그리하여 사람들은 잠재의식 가운데 공산당에 더욱 의지하게 되었다.

(5) 당이 ‘출로’

전 사회의 권력이 당에 의해 통제되어 당에 들어가지 않으면 간부로 선발될 수 없고 공청단에 가입하지 않으면 개인의 전도에 영향을 받는다. 심지어 소년선봉대에 들어가지 않아도 큰 수치가 된다. 중국에서 사람들이 당 조직에 가입하는 것은 사회적인 출로를 찾는 전제 조건이다. 당은 사람들의 사업과 생활을 긴밀히 연계시켜 놓았다.

(6) 개인생활과 한데 뒤섞어

당지부 서기는 정당한 직업에 종사하지 않으며 정당한 직업도 없다. 그는 당의 방침과 정책을 선전하고 주입하는 외 사상공작을 틀어쥘 뿐이다. 이 사상공작은 군중들이 당 주위에 굳게 뭉치는 이런 정치사상이 있는가 여부를 감독할 뿐만 아니라, 이웃 사이의 분쟁, 직원들 사이의 갈등과 가정불화도 모두 포함된다. 때문에 당과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사생활을 포함하여 모두 갈라놓을 수 없게 되었다.

“우수한 인격과 고상한 풍모.” : 현 중공 지도자가 독재자 장쩌민을 찬양하며 한 말. | 에포크타임스

(7) 자신을 ‘도덕의 화신’으로 표방

공산당 사회의 도덕이 매우 낮고, 특히 지금의 중국 대륙은 도덕위기가 사회적인 관심사로 되었지만, 공산당은 일관적으로 자신을 도덕의 화신으로 표방하고 선전해 왔다. 매 시기마다 모두 한 무더기 도덕 구호가 존재했다. 무슨 ‘3대 기율(紀律) 8항 주의(注意)’, ‘레이펑의 모범을 따라 배우자.’ ‘5강4미(五講四美)’, ‘정신문명’, ‘3개 대표’, ‘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 ‘8영 8치’, ‘조화사회’ 등이다. 중공이 창도하는 도덕관은 오직 당에 충성하고 당을 수호하는 도덕관으로 공산당 자신은 도덕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도덕은 점점 더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 오늘에 이르러서는 이미 온갖 폐단이 속출하였다. 하지만 이런 도덕 정치선전 운동은 사람들에게 당이 도덕을 중시한다고 오인하게 만들었다. 학교에서 도덕과목은 정치과목에 속하여 당과 한데 묶어 놓았기에 사람들은 당이 사람들에게 도덕을 배우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믿는다. 비록 중공이 도덕을 선전하는 최종 목적은 사람들에게 ‘당의 말을 듣고 당을 따라 가며 당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무엇을 하게’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어려서부터 주입받은 당이 이른바 ‘도덕의 화신’이라는 교육체제로 인해 사람들은 늘 당 자체는 좋은 것이라고 믿으면서 나쁜 일은 모두 극소수 사람들이 한 것이라고 여긴다. 이 일체는 공산당과 그 자체가 조성한 도덕의 부패를 갈라놓게 했다.

(8) 국가와 민족의 대리인으로 자처

애국에 대한 열정과 민족 감정은 가장 소박한 공민 의식인데 공산당은 이런 감정의 표현을 죄다 자기 손에 쥐고 조종한다. 애국주의와 민족자존 교육은 기본적으로 공산당이 소선대(少先隊), 공청단(共靑團)과 공산당 당 지부를 통해 선전하며, 선전할 때는 늘 애국주의 교육이란 명분으로 한 무더기씩 거짓말을 주입하여 공산당을 열애하게 한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커서까지 공산당에서 국가와 민족에 대한 정보를 받는데 습관이 되어 사람들은 공산당이야말로 애국과 민족이익의 수호자라고 여기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국가와 민족의 대리인으로 자처하는 당을 더욱 열애하게 된 것이다.

중공이 애국주의를 선전할 때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어휘가 있는데 바로 ‘애국진보인사’이다. 여기서 ‘진보’란 바로 공산당을 옹호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 이면의 의미는 무엇인가? 오직 공산당을 지지하는 사람의 애국만이 의의가 있고 정확한 것이라는 것이다. 반당(反黨) 인사는 애국할 자격이 없거나 혹은 애국을 해도 ‘낙후’하고 착오적인 것이다. 이런 선전은 확실히 사람들의 사유를 혼란하게 만들었다. 애국은 곧 애국이며 정치를 초월한 것으로 중공의 이따위 연극은 도리어 중공이 진정한 애국이 아님을 설명할 뿐이다.

중공은 ‘반당(反黨) 반인민(反人民)’이라는 또 다른 어휘가 있다. 사실 이 두 단어는 별개임에도 한 자리에 놓고 말하는 것으로 장기간 이렇게 지내오면서 사람들은 반당이 곧 반인민이라는데 습관이 되어버렸다.

(9) 당이 최고 책임자

중공은 다년간 ‘당정(黨政) 분리’를 외쳐왔다. 하지만 당은 자신의 권력을 포기하려 하지 않으며 전혀 분리하지 않았다. 중앙에서 지방, 가도(街道), 향진(鄕鎭)에 이르기까지 당 서기는 영원히 최고 책임자이다. 위에서 아래까지 빼곡한 최고 책임자 권력구조는 사람들로 하여금 별 수 없이 ‘당이야말로 진정한 관리자’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했고, 사람들은 ‘당과 정부’라고 말하는데 습관되어 ‘정부와 당’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당을 떠나 일을 담론한다는 것은 의의가 없다고 여긴다.

(10) 거시적으로나 미시적으로 정부를 제압

공산당은 매 단위에 서기를 파견하는 것으로 일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중앙에서부터 기층에 이르기까지 정부기구와 병행하는 일련의 집단이다. 즉, ‘중앙군사위원회’와 ‘국가군사위원회’, ‘당중앙’과 ‘국무원’, ‘성위원회’와 ‘성정부’, ‘현위원회’와 ‘현정부’, ‘향당위원회’와 ‘향정부.’ 정부에 ‘공안검찰법원(公檢法)이 있다면 당에는 정법위원회가 있으며, 정부에 ‘광전부(廣電部)’가 있다면, 당은 중선부(中宣部)가 있으며, 정부에 ‘인사부’가 있으면 당은 ‘조직부’가 있고, 정부에 ‘감찰부’가 있으면 당은 ‘규율검사위원회’가 있다. 당은 최고 책임자이며 당위원회는 영원히 정부를 지도한다. 사람들은 당이 없으면 정부부문을 마땅히 어떻게 운행해야 할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 관리는 모두 당 계통에서 임명하고 정부 관리의 대부분은 모두 당원이다. 관리 신분의 2중성은 당과 정부를 얼기설기 뒤엉키게 했다.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각 당파의 당원, 조직기구를 납세자들이 먹여 살리지 않는다. 그러나 공산당은 직접적으로 정부에 달라붙어 각종 전업, 파트 타임 당무(黨務) 기구를 납세자들의 피 같은 돈으로 먹여 살린다.

국가의 운영은 본래 정부에 의지한다. 하지만 공산당은 정부에 달라붙을 뿐만 아니라 거시적으로나 미시적으로 동시에 정부를 제압하여 정부의 크고 작은 정책을 장악하고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 말한다면 행정 부문은 층층이 당이 영도하고 있으며, ‘당중앙’이 ‘국무원’을 지도한다. 그러므로 정부는 서기의 말을 들어야 한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정부관리 자체가 당원이므로 당원 소조회의에서 하급은 상급에 복종해야 하며, 전체 당은 중앙에 복종해야 한다. 그러므로 거시적 관점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당은 미시적 관점을 통한 수법으로 꼭 해결하고야 만다. 이와 같이 당은 한편으로 정부를 완전히 억제하여 자신의 괴뢰로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로 하여금 도대체 어느 것이 당이고, 어느 것이 정부인지 분간할 수 없게 했다. 그리하여 늘 당과 정부를 뒤섞어 말하게 된 것이다.

(11) 좋은 일을 모두 이용해 자신을 미화

운동선수가 상을 타거나 과학자가 인공위성을 하늘에 올려 보내거나 농민이 풍작을 거두거나 올림픽 개최를 한다거나 저수지를 수리했다거나 하면 중공은 모든 공로를 자신에게 돌린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자 사람들은 정말로 이런 비뚤어진 이치를 인정하게 되었다.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기만하여 입당시키는데 이런 좋은 일은 모두 중공이 한 것으로 된다. 그러므로 다만 중국의 좋은 일을 말하기만 하면 사람들은 자연히 중공의 좋은 일을 말한다고 여기는 현상이 나타났다. 즉, 모든 것이 중공을 미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당의 정책이 좋다’는 말이 있는데 당이 농민을 상관하지 않아도 농민은 먹을 밥이 있고, 당이 개체호를 상관하지 않아도 개체호는 돈을 벌 수 있으며 당이 교란하지 않으니 백성들은 잘살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본래 공산당이 얼마나 나쁜가를 폭로하는 것인데 공산당은 반대로 ‘정책이 좋다’고 하고 백성들도 덩달아 감지덕지한다. 지금 중국 경제의 표면적인 번영은 싼 노동력, 해외투자와 중국인들의 총명과 근면에 의한 것이지만 중공은 이것을 모두 자신의 정치적인 자본으로 만들었다. 사실 이와 정반대로 중공은 눈앞의 성공과 이익, 그 합법성을 수호하기에 급급한 심태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자원이 낭비되고 환경이 파괴되었으며, 사회적인 불공평과 도덕의 타락을 조성했는지 모른다. 중국이 십몇 억의 인구를 지닌 큰 시장이 있기 때문에 중국 붐이 일어난 것이지만 중공의 선전은 언제나 중국에 대한 세계의 중시를 중공에 대한 옹호라고 한다.

“전체 당은 중앙에 복종해야.” | 에포크타임스

(12) 툭하면 일체를 대표하고 지도

중공 독재정권은 ‘국가’, ‘민족’과 ‘인민’이란 말을 입에 올리길 좋아하며, 걸핏하면 전체 중국 인민의 어떠어떠한 것을 ‘대표’한다고 외친다. 백성들에게는 언론을 발표할 몫은 없고 다만 중공에 의해 ‘대표’ 될 뿐이다. 반복적으로 ‘대표’되다 보니 이 역시 습관이 되어 마치 중공이 정말로 인민을 ‘대표’하는 것 같다.

당은 일체를 대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일체를 관할할 수 있다. 당은 정부를 관할하고, 군대, 국가기관, 외교를 관할할 수 있으며, 매 사람의 의식주와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것까지 관할할 수 있다. 당은 암세포처럼 중국사회 구석구석까지 침투했다. 이것은 정말이지 민족의 커다란 불행이 아닐 수 없다.

(13) ‘반당(反黨)’을 ‘반중국’으로 만들어

비록 당이 도처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어 사람들이 당과 정부, 국가, 민족의 개념을 분명히 가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공산당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으로 ‘반당’, ‘반공’에 ‘반 중국’이란 덧칠을 하여 시비를 뒤섞는 선전을 한다.

공산당의 폭정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어떤 서양국가에서는 이민자 가운데 세 부류의 사람들이 가장 환영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바로 나치, 테러리스트와 공산당이라고 한다. 공산당을 반대하는 것은 아주 보편적인 일이다. 하지만 중공은 반공언론을 비판할 때 언제나 상대방에게 ‘반중국’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놓는다. ‘반중국 세력이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확고하게 반공하면 ‘반 중국 두목’이라고 부른다. 만약 중국인 자신이 중공을 반대한다면 특히 ‘매국’이라고 하거나, ‘중국 인민에게 먹칠’한다고 욕하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공’이 바로 ‘중국’이며 ‘중국인민’이라고 주입된 것이다.

당이 ‘일체’가 된 후 사람들은 정말로 당과 정부, 국가와 민족의 관계를 분명히 알지 못하게 되었다.

2) 당과 정부, 당과 국가, 당과 민족의 개념을 뒤섞어

미국 대통령을 비평하는 사람에게 그가 미국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공격하는 사람은 없다. 미국 공화당을 비평한 사람에게 그가 미국 국민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공격할 사람도 없다. 집권당을 반대한다는 것이 미국 정부를 반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국 백악관 앞에서나 미국 바깥에서 미국 정부에 항의하는 미국인에게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모자를 씌우지 않을 것이며, 그가 미국 국민들의 체면을 깎았다고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더구나 어느 당을 반대했다 하여 국가전복죄로 기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만약 공산당을 폭로하고 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평하면 많은 사람들이 욕설을 해댄다. 당신은 중국인인가? 해외에서 만약 누가 중공 고관에게 항의를 할 때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면서 중국인의 체면을 깎아내렸다고 여긴다. 외국 정치인이 중공을 비평하면 중공은 일체를 무릅쓰고 용감히 일어나 비판하며 국민들도 뒤따라 부화뇌동한다. 이 사람들의 분노는 흔히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당신이 중공의 악행을 폭로하는 그 시각에 그는 정말로 당신이 그의 체면을 잃게 했다고 여기면서 당신이 중공의 추한 일을 폭로했기 때문에 서양인들이 그를 깔보고, 업신여기게 되었으며, 서양인들 앞에 낯을 들 수 없게 했다고 여긴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이런 반응이 전혀 없다. 중국 사람이 감히 나서서 전제정권을 폭로하는 것을 보고 도리어 서양인들은 당신의 용기와 양심에 탄복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 중국인들에게 ‘체면이 깎인다는 망상증’이 존재하는가? 바로 당과 정부, 당과 국가, 당과 민족의 개념을 한데 뒤섞었기 때문이며, 자신을 중공의 한 분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애국을 애당과 같은 것으로 여기며 중공을 비평하는 것을 중국을 비평하는 것으로 여기고, 중공을 반대하는 것을 중국에 반대하는 것으로 여기고 중국 인민을 팔아먹는 것으로 여긴다.

중공 지도자가 해외를 방문할 때면 현재 아주 특별한 한 장면이 있는데 바로 항의하는 군중들이 있는가 하면 중공이 조직한 환영 군중도 있다. 그러나 환영 군중은 기본적으로 환영받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 그런데도 왜 환영하러 나오는가? 그들 자신은 이렇게 이해한다. 지도자를 환영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지도자가 그들에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을 것을 뻔히 알지만 그들이 오는 목적은 항의 군중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후진타오 주석이 2006년 미국 백악관을 방문할 때 서방매체가 환영대오의 조직자를 취재하면서 물었다. “저 맞은편을 보면 2천여 명의 항의자들이 있습니다. 당신은 이 일을 어떻게 봅니까?” 그러자 환영 대오의 조직자가 대답했다. “중국 지도자의 방문은 아주 기쁜 일이다. 이러한 때에 지도자에게 항의하는 것은 시의가 적절하지 않은 일이다.” 이 대답은 아주 우습다. 시의에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당신이 이 항의자들에게 적당한 항의 시간을 줄 수 있는가? 중국 대륙에서는 중국 지도자를 만날 기회가 근본적으로 없거니와 민감한 문제로 청원하러 가면 ‘사회 질서를 교란’한 죄로 감옥에 갇혀야 한다. 하지만 지도자가 민주국가에 오면 인민들에게 비로소 항의할 기회가 생기며, 국내에서 말할 권리가 없던 동포가 요구를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기쁜 시각’에 항의하는 것은 ‘시의에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지도자가 해외를 방문한 것은 모두 아주 기쁘긴 하지만 항의할 기회는 전혀 없게 될 것이다. 환영 군중들은 자신들의 애국적 열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항의 군중에 대처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중공 지도자가 박해받는 인민의 마음속 말을 듣지 못하게 한다면 어떻게 잘못을 고치겠는가? 잘못을 고치지 않고 계속 인민을 탄압한다면 국가와 민족에게는 재난이 아닌가? 이런 좋지 못한 결과가 애국인가 아니면 나라를 해치는 것인가? 다시 말해서 환영 인파들은 애국이란 구실로 왔지만 사실상 애당을 위해 온 것이다.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정부를 옹호한다고 표현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거를 통해 이 점을 이미 표현했기 때문이다. 정반대로 사람들은 정부에 대한 불만은 표현하려 한다. 정부가 얼마나 일을 잘했든지 그것은 모두 그가 할 일이고 애당초 국민들이 당신을 선출한 것은 당신이 잘할 것 같기에 뽑은 것이 아닌가? 반대로 정부가 잘하지 못하면 물러나야 하며 잘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어야 한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 프랑스 대통령이 해외를 순방할 때 프랑스 대사관에서 사람들을 조직해 환영하러 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선거로 선출된 정부 지도자도 이런 자신감이 있는데 그는 외재적인 형식으로 자신의 권력 합법성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공산당이 이렇게 할 때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고, 환영하는 사람들도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이것은 바로 중공의 집권 합법성이 부족하기에 의도적으로 날조한 조치이다

당과 나라를 구분하지 못하는 혼란한 사유는 중공이 의식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중공은 자신에게는 다만 몇십 년의 시간밖에 없으며 그마저도 외국에서 수입한 외래품임을 알고 있기에 의지할 것을 찾아야 했다. 그리하여 중공은 몇십 년 동안 줄곧 자신을 애국자로 치켜세웠고, 자신을 중화민족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으로 치장하여 백성들을 속여 왔다. 뿐만 아니라 당과 국가, 인민, 정부를 늘 애당애국, 반당 반(反) 인민, 반당 반(反) 정부와 함께 연결하여 사용했다. 때문에 당과 국가 사이에 각종 혼란을 조성했다.

3) 중공은 중국이 아니다

우리가 확립해야 할 한 가지 상식이 있다면 바로 중공은 중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당과 국가, 민족은 원래 같은 개념이 아니다. 중국은 한 국가, 한 민족으로 몇천 년을 존재해 왔다. 하지만 중공이 나타난 것은 겨우 80여 년 역사가 있을 뿐이며 중국을 통치한 것도 겨우 50여 년에 불과할 뿐이다.

중국이란 이름은 예로부터 있어왔다. 가장 초기에는 ‘천하’(세계) 중심에 있는 중원지대를 가리켰다. 근대에 와서, 특히 1912년 중화민국이 세워진 후 ‘중국’이란 이름이 민족국가의 의의를 지닌 법률과 정치적 개념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역사적인 각도에서 ‘중국’은 삼황오제(三皇五帝) 전설 시대부터 시작되어 하(夏), 상(商), 주(周), 진(秦), 한(漢), 위(魏), 진(晉), 남북조, 수(隋), 당(唐), 5대10국, 송(宋), 원(元), 명(明), 청(淸), 중화민국과 사이비 중화인민공화국 등 일련의 조대와 정권이 연계된 역사적인 정체이다. 지리적 각도에서 보자면 유라시아 대륙의 동부, 태평양 서안에 위치한,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약 13억)국가로서 국토 면적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 정치 혹은 행정적인 각도에서 보자면 현재 두 개의 정치체제가 공존하고 있다. 중국 대륙에 있는 홍콩, 마카오를 포함한 ‘중화인민공화국’이 있고, 대만에 있는 중화민국이 그것이다.

중국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아마 중국의 지도거나 그곳의 친지들, 끊임없이 왕래하는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만리장성, 황하, 특징적인 건축, 문물고적이거나 박대정심(博大精深)한 중국 문화 등일 것이며 한 정당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자연적인 반응이다. 국가란 단어의 내포에는 영토와 영토 위에 거주하는 인민, 경제, 과학기술, 문화, 음식, 교육, 명절, 사회, 종교와 정치 등 많고 많은 것들을 포함한다. 중국이라고 하면 역사, 지리, 문화, 혈연적인 중국을 가리키는 것이지 중공은 중국이 아니다. 가장 간단한 예를 들자면, 지금 중국제품이 세계를 휩쓸고 있는데 상품 라벨에 적힌 ‘메이드 인 차이나(中國製造)’를 ‘중공 제조’라고 이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생활 가운데서 중국인들은 확실히 중공을 중국으로 여기며 애국을 애당과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 중공을 말하기만 하면 많은 사람들의 잠재의식은 중국이 어떠하다고 느낀다. “공산당이 없어도 중국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공산당이 없어지면 중국은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말이 아직도 큰 시장을 가지고 있다.

중국인들이 보편적으로 공산주의를 믿지 않고 탐오와 부패가 성행하는 오늘날, “우리 당은 일관적으로 정확하다”, “사회주의는 좋다” 등의 정치구호로 더는 중국인들에게 공산당을 믿게 할 수 없다. 중공 통치를 유지하고 사람들이 왜 공산당이 중국을 통치해야 하는지 묻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중공은 또 한 번 당과 국가의 개념을 뒤섞었고, 협애한 애국주의와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이용해 중국인들의 애국정서를 당에 대한 정서로 유도했다. 애당(愛黨) 행위와 사상은 중공에 의해 애국적 행위와 표현으로 선전되었다.

중공중앙에서 제정한『애국주의 교육 실시요강』의 중요한 목적은 바로 중국인들이 경제를 건설한 성과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당의 노선을 견지하게 하려는 것으로, 당 노선의 내용을 이용해 애국주의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다. 우선 당이 하는 일은 모두 중국을 좋게 하려는 것이라고 인정하게 한다. 그런 다음 수단을 바꾸어 중국의 성적은 모두 당이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에는 애국을 당의 노선을 견지하는 것으로 정의해 개념을 뒤섞으려는 목적을 일으키며 당을 사랑하고 당을 옹호하는 것을 애국이라고 한다.

4) 애국은애당이 아니다

중국은 자고로 애국자가 적지 않았지만 애국이 애당은 아니다. 진정한 애국자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인민의 질곡이지 어느 수령, 정권 혹은 당파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다. 애국자는 언제나 사회의 병폐를 꾸짖으며 현실을 비평한다. 굴원은 일찍이 “긴 한숨으로 눈물 닦으려니 사람의 삶 고단하여 슬프구나(長太息以掩涕兮,哀民生之多艱)6)”이라 하였고, 두보는 “부잣집에서는 술과 고기 썩는 냄새가 나고, 길가에는 얼어 죽은 사람의 시체가 뒹군다(朱門酒肉臭,路有凍死骨)”라고 비판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중국의 진정한 애국자들이다. 하지만 오늘날 중공의 표준에 따르면 그들은 아마 ‘악독하게 정부를 공격’한 ‘반당 반정부’의 죄명으로 비판을 받고 감옥에 갇혔을 것이다.

오늘날 중국 대륙에 유행하는 관념은, 사실 중공 정권의 의지 아래 그것이 규정한 방향대로 행동할 뿐만 아니라 중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성취에 환호하는데 이것이 곧 애국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일종의 황당하고 왜곡된 애국의식이자 행위이다. 2003년 사스가 폭발했을 때 당시 위생부장이었던 장원캉(張文康)은

애국이란 무엇인가? : “천하의 근심은 가장 앞서 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가장 뒤에 한다.”(전통문화) 애국은 곧 당을 사랑하는 것이며 당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애국이다.(당문화) | 에포크타임스

중국은 아주 안전하며 사스는 이미 통제되었다고 맹세하듯이 표시했다. 하지만 그가 표현한 것은 당에 대한 충성이지 인민에 대한 충성이 아니었다. 그는 당을 사랑하고 자신의 관직을 사랑했을 뿐 진정한 애국이 아니었고 민족을 사랑한 것도 아니다. 이러한 애당이 지불한 대가는 중국인들의 생명이었다. 진정한 애국자는 장융(蔣永) 의사와 같이 사스의 진상을 공개하여 사스가 중시되게 하고 조치를 취하게 하여 더욱 많은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다. 진정한 애국은 중공에게 자신의 충성을 표시하기 위해 하는 ‘애국’적 맹세가 아니라 중국에 대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책임을 지는 것이다. 중국 인민에 대한 집권자들의 박해를 반대하는 것은 진정한 애국의 표현이며, 중공의 비방과 중공이 당과 정부, 국가의 개념을 뒤섞었기 때문에 사유 상에서 여러 가지 오류들이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박해 받는 사람들의 평화적인 항쟁의 정면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5) 누가 중국의 이미지를 해치는가?

중공을 비평하는 사람들에게 공산당이 늘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중국의 이미지를 해치고, 중국인들의 감정을 해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공은 중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공을 비평하는 것은 당연히 중국을 비평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진정으로 중국의 이미지를 해치는 것은 바로 중공 자신이다. 중국 옛사람들은 “멀리 있는 사람들이 굴복하지 않으면 문덕을 닦아 오게 한다(遠人不服,則修文德以來之).”라고 말했다. 자신이 잘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자연히 이미지가 좋을 것이다. 중공이 중국 민중을 박해하고, 신앙자, 독립적인 사상자,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의 인권을 박해하며, 공산당 체계를 이용하여 잔혹한 통치를 하며, 국제적으로 폭군과 독재자를 부추기는 등의 행위는 국제사회가 중공을 비평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때문에 바로 중공의 고압적이며 잔혹한 정책이 중공의 이미지를 해친 것이다. 그러나 중공이 민중을 박해하는 것을 비평하는 사람들은 바로 중국의 이미지를 수호하려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중국인들이 용감하게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자신의 착오를 고칠 용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5년 10월 24일, 미국의 한 흑인 부인 로자 팍스(Rosa Parks)라 부르는 여인이 세상을 떠났다. 50년 전, 그녀는 앨라배마 주의 한 버스 안에서 불공정한 인종차별법에 불복해 백인에게 좌석을 양보할 것을 거부했다. 그녀의 시민불복종 의거는 왕성한 인권 운동을 촉발했고 인종차별 제도는 이로 인해 폐지되었다. 그녀의 장례식에서 케네디 하원 의원은 미국은 진정한 영웅을 잃었다고 말했다. 흑인인 미국 국무부장관 라이스는 “만약 그녀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나는 국무부장관 신분으로 이 자리에 서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한편 미국 민중들이 아주 존경하는 또 다른 인권 지도자가 있으니 바로 마틴 루터 킹 목사이다. 1963년, 그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25만 명이 참가한 집회를 조직하여 인종차별을 반대하고 평등을 요구했다. 바로 이 집회에서 그의 유명한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발표했다. 다음 해에 그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가 사망한 지 15년 후 미국은 ‘마틴 루터 킹의 날’을 국경일로 정해 기념했다. 그는 미국의 국부인 워싱턴 대통령을 제외하고 이런 특수한 영예를 지닌 유일한 일반인이다.

하지만 로자 팍스와 마틴 루터 킹이 미국을 망신시켰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미국의 국가 이미지에 손해를 끼쳤다고 하는 사람도 없다. 반대로 그들은 미국에 영광을 가져다주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대한 용기로 인권과 존엄을 수호하고 평등과 정의를 가져왔기 때문에 사람들의 존경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노력으로 한 인종의 운명이 개변되었고 미국이 개변되었으며, 심지어 세계도 개변되었다.
미국의 저명한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 에포크타임스

중공이 중공 정권과 중국인을 박해하는 중공을 폭로하는 사람들을 비방하면서 늘 사용하는 한 가지 이유는 바로 국가 이미지이다.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정의로운 사람들의 정신과 목적을 안다면, 만약 우리가 중공이 중국의 이미지를 해친 진정한 원흉임을 안다면 우리는 오늘날 중공 폭정을 반대하는 수많은 항쟁자들, 특히 수백만 파룬궁 수련생들이 진상을 알리고 박해에 반대하는 노력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을 지키고 중공의 무고한 백성에 대한 박해를 제지하는 것은 중국인들의 정당한 권리이다. 그들의 노력은 사실상 모든 중국인들의 천부인권과 존엄을 수호한 것이며 중국의 이미지를 수호한 것이다.

6) 조종은 중공을 위해 울릴 뿐

당(黨)문화에 깊이 세뇌된 일부 사람들은 중공이 망한다는 말을 듣자 생각하는 것이 곧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지?’이다. 마치 중공이 망하면 자신도 망할 것처럼 여긴다.

‘9평’ 연구 토론회에서 한 할머니가 질문했다. “공산당이 무너진 후에는 누가 우리에게 연금을 주는가?” 한 강연자가 말했다. “공산당이 사라지면 방대한 관리계통이 없어질 것이고 아울러 이 방대한 관리계통은 세상에서 가장 부패한 관리들로 그들이 사라진 후 중국 백성들의 퇴직금은 배로 늘어날 것입니다.”

중국과 중국인들에게 거대한 재앙을 초래한 중공과 그 배후의 붉은 용. | 에포크타임스

중화민족은 위대한 민족이다. 해외에 있는 화인들을 보면 곧 알 수 있겠지만 공산당이 없으니 더욱 잘살고 있지 않은가. 만약 중국 대륙에 공산당의 통치가 없었다면 오늘날 중국인들의 평균수입은 대만과 비슷할 것이며 그렇다면 오늘날 중국의 경제규모는 미국의 두 배로 미국, 일본, 러시아 등 몇몇 강대국의 것을 다 합친 것과 같은데 중국이 아직도 오늘날과 같이 이런 모양일 수 있겠는가?

중국의 정부 관리를 놓고 말한다면 공산당이 사라진다고 하여 그들이 끝장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그들의 진정한 해방이다. 공산당이 사라져야 그들은 비로소 진정으로 재간을 펼칠 수 있으며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 지금의 관리들은 모두 어쩔 수없이 중공의 거친 지도에 순응하거나, 아예 당 계통에 의해 수족이 묶여 바른 일을 하고자 해도 할 수 없으며 타락되지 않으려 해도 안 된다.

지금의 중국인들은 반생 혹은 일생을 모두 공산 중국에서 살아왔다. 비록 이 시기 역사가 공포와 거짓으로 충만하긴 했어도 많은 사람들의 청춘, 이상, 우정, 애정, 혼인, 가정, 성과 심지어 전체 인생이 모두 중공이 통치한 기간과 불가분하게 뒤엉켜 있다. 민주 자유를 위해 여러 해를 노력해 온 사람들, 그들의 지혜와 온갖 고생도 이 기간의 역사와 뒤엉켜 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일정 정도 중공의 죄악을 인식하고 있지만 감정적으로 아직도 중공과 중공의 당문화에 대해 상당히 큰 의지가 존재한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이른바 ‘혁명가곡’을 부르는 것으로 내심의 감정에 부합한다. 아니면 이런저런 ‘홍색경전’을 예술로 여긴다. 불공정한 대우를 받은 사람들은 오히려 ‘마오 주석’ 시대의 절대 평균주의를 그리워한다. 외래문화의 충격에 대해 근심하는 사람들은 당문화를 중화문화로 오인하고 수호하려 하는 등이다. 이와 같이 옛것을 그리워하는 정서는 되돌아와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하게 이지적으로 중공의 역사와 중국의 현실상황을 자세히 살펴볼 수 없게 만든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의 경력과 중공이 하나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을 수호하고 소중히 여기는 와중에 자신도 모르게 중공의 몫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일단 ‘당’이 사라지면 어떤 사람들은 마치 말도 할 줄 모르고 손발을 어디에 놓을지 몰라 쩔쩔매면서 인생의 의미도 어디에 기탁하면 좋을지 모르면서 마음속으로는 심지어 공허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사실, 한 사람이 사업을 성취하고 인생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중공은 ‘공산주의를 위해 평생 분투하겠다’는 망상에 가득 찬 위험하고 좁은 길로 사람들을 몰아넣었다. 예로부터 성현들은 정상적인 사회에서 자신에 대한 수양을 통해 숭고한 인생경지에 도달했다. “하늘이 나를 낳았으니 반드시 쓰임이 있을 것이다(天生我材必有用).” 각 업종의 엘리트들도 모두 자신의 방식으로 사회를 위해 공헌하여 청사에 이름을 남겼다. 공산당이 없는 중국사회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등 중국 전통도덕을 회복할 것이며 사람 사이의 관계는 더욱 너그럽고 화목해질 것이다.

동유럽 공산진영이 해체된 후, 당문화 속에서 살던 민중들은 거짓말로 포장된 생활에서 해탈했다. 그들은 정부가 여과해낸 거짓 신문을 볼 필요가 없게 되었고, 당문화로 만들어진 자신의 사유를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되었으며, 자기가 바라는 생활을 선택할 권리가 있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진정한 생활 상태이다. 비록 중공 매체들은 동유럽 국가들에 대해 줄곧 흑색선전을 하면서 중국인들은 절대 중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평화적으로 체제를 변경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표시하지만 사실 소수 국가를 제외하고 동유럽의 개혁은 전체적으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동유럽이 체제를 바꾼 지도 이제 거의 20년이 되어간다. 비록 공산당이 또 다시 당을 조직하여 선거에 참가하고는 있지만 공산당을 다시 선택한 나라는 하나도 없으며, 당문화를 다시 선택한 민중도 없었다. 공산당과 당문화를 포기한 동유럽 사람들이 잃은 것은 감옥뿐이요 얻은 것은 조용하고 편안하며 자유롭고 정상적인 생활이다. 사회와 국가는 단지 붕괴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더욱 생기발랄해졌다.

때문에 조종은 다만 중공을 위해 울릴 뿐이다. 당이 망하는 것은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니다. 중공은 현대 중국인들이 고난에 처하게 된 근원이다. 이지를 잃고 옛 것을 그리워한다면 중공은 당신의 심령에 대한 통제를 더 강화할 것이며 당신을 과거의 악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 .

중공을 해체하고 당문화를 해체하는 것은 모든 중국인들에 대해 말한다면 모두 일종의 새로운 탄생을 의미한다.

결론: 정상적인 사유로 돌아가자

사람의 머리는 마치 자루와 같아서 황금을 담으면 황금 자루가 되지만 당문화를 담으면, 이 사람은 곧 공산당 사상을 담은 자루가 되어 부지불식간에 공산당의 메가폰이 된다. 중공의 선전은 중국인들의 생활 곳곳에 덮여있어 중국인들은 성취가 뛰어난 학자에서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당문화를 떠나서는 모두 정상적인 사유를 할 수 없으며 정상적으로 말할 방법이 없다.

공산당은 바로 당문화, 이데올로기, 당에 대한 공포를 모든 중국인들의 세포 깊숙한 곳 심령 깊은 곳에 침투시켜 조건반사를 형성하려 한다. 이것은 일반적인 의미를 가진 문화의 탄생과 전파가 아니며 중공독재와 폭정을 건립하는데 필요한 ‘부드러운 전정(專政)계통’을 위한 것이자 사상의 전정계통이기도 하다. 당문화에는 중공 최고층의 관리거나 일반 백성이거나 상관없이 모두 당문화 속에서 생활하므로 당문화 사유의 영향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 결과는 상당히 두려운 것이다.

중국인들의 당문화 사유는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며, 그것은 어느 개인이나 어느 관리의 문제도 아니며 전반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 과정은 중공이 장기간에 걸쳐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것은 왜곡된 도덕과 선악 표준을 이용했으며 폭력적인 주입과 피비린내 나는 테러를 통했으며, 기만 선전과 왜곡된 논리를 통해 중국인들로 하여금 중국의 모든 사회 자원을 강제로 점거한 공산 집단에게 감격하게 만들고 공포를 느끼게 만들며 사람들을 당문화의 죄수와 노예로 만들어 기꺼이 중공의 거짓말을 받아들이고 정상적인 사유를 배척하게 했다. 바로 이런 비정상적인 사유는 역으로 중공의 거짓과 기만을 유지되게 했고 중공의 폭력 전정(專政)이 유지되게 했으며 중국인들의 고난과 비극이 유지되게 했다.

일종의 정형(定型)적인 사유나 심리방식을 바꾸려면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하며 일종 집단적인 반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당문화 사유는 정반대로 안으로 반성하는 것이 없다. 중공의 정보 봉쇄 속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각도의 견해를 듣기가 아주 어려우며, 일종 새로운 시각으로 사람들의 습관적인 사유를 충격한다는 것은 더욱 말할 나위조차 없다. 하지만 당문화의 함정에서 나와 정상적 사유로 회귀하자면, 진정으로 자신의 심령과 사상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오늘 우리가 일찍이 중공의 왜곡된 사유에 의해 자발적으로 당문화의 영향으로 형성된 관념과 사유방식으로 개변하려 했다는 것을 정시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을 반성하고 중공 부체에서 벗어나자 | 에포크타임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진정으로 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생각한다면 곧 당문화의 사유를 포기해야 하며 정상인의 방식으로 사유해야 한다, 진정으로 건강한 생활과 사회를 얻고자 한다면 매 사람마다 각자 자신의 당문화 사유를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왜냐하면 중국 사회는 매 하나의 중국인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그 중에는 당신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판권은 대기원에서 소유하며 전재를 환영하나 내용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중문: http://www.epochtimes.com/gb/6/11/19/n1526477.htm